'마이너스 2000만원' 갓 때어난 아가부터 고3 수험생, 병석에 누워있는 할아버지까지. 경제력이 있건 없건 우리나라 사람들은 모두 '-2000만원'이라고 찍힌 마이너스 통장을 갖고 있다. 4인 가족이라면 한 가정 당 이미 8000만원의 빚을 지고 있는 셈이다.
'빚'이 늘어나는 속도는 빛보다 빠르다. 올 3분기에만 가계대출이 작년보다 100조원 넘게 폭증했다. 이제 우리에게는 '-3000만원'이라고 씌어있는 마이너스 통장을 손에 쥐게 될 날이 멀지 않을 수 있다는 뜻이다.
다행이라면 다행이랄까. 아직은 초저금리 덕분에 이자가 저렴하다. 하지만 다음 달 미국의 금리인상이 확실시 되는 상황에서 우리나라도 머지않아 금리는 올라갈 것이다. '풍전등화'다.
이미 우리나라 가계빚의 심각성을 우려하는 경고의 목소리는 곳곳에서 끊임없이 터져 나오고 있다. 올 3월에는 미국의 컨설팅 회사 맥킨지가 우리나라를 세계 7대 가계부채 위험국으로 꼽았을 정도다. 그럼에도 정부는 빚더미에 의지한 부양책만 쏟고 있다. 내수활성화 진작을 위한 '코리아 블랙 프라이데이(코리아 블프)'가 대표적이다.
정부의 대대적인 소비 진작책의 결과가 막상 뚜껑을 열어보니 서민의 빚잔치로 성공한 것이다. 10월에 마이너스대출이 2조원이나 급증했는데 2010년 5월 이후 사상최대치다. 소비자들이 블프 행사에 싸게 나온 물건들을 신용카드로 과하게 구입하다보니 이를 결제할 돈이 부족하자 마이너스통장 대출에 의존한 것이다. 결국 블프 때 지불한 돈의 대부분은 은행 빚이었던 것이다.
문제는 소비증가로 당장 성장률을 높이는 효과는 있겠지만 빚을 내 쓰는 소비는 미래의 소비를 앞당겨 하는 것인 만큼 앞으로 소비 위축이 이어질 가능성이 크다는 점이다. 소비증가가 공급을 늘려 경기회복으로 연결되는 선순환보다는 경기침체의 골을 더 깊게 하는 위험이 커질 수 있다는 경고는 과하지 않다.
소비심리를 살펴보자. 정부는 '빚내서' 지출할 정도로 소비심리가 나아지고 있다고 하지만 작년 4월 세월호 참사가 있기 전 수준으로 회복되지는 못했다. 또 경기 전망에 대해서는 비관적인 인식이 여전히 크다. 잇따른 정부 정책에도 불구하고 소비심리는 예년 수준으로 올라서지 못하고 빚만 쌓여가는 형국이다. 경기 부양책은 만병통치약이 아니다. 언젠가 대가를 치러야 하는 정책이다. 정부는 국민들 손에 하나씩 쥐고 있는 마이너스 통장이 보이지 않는가.
김하늬 기자 hani4879@etomato.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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