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뉴스토마토 최기철기자] 변호사를 고용하거나 명의를 빌려 개인회생사건 등을 불법 대리한 브로커와 대부업자 등 일당이 무더기로 기소됐다.
변호사업계 불황, 변호사 수 증가로 수임경쟁이 극에 달하고 개인회생 관련시장을 브로커들이 장악한 것이 원인으로 분석돼 대책 마련이 시급한 것으로 보인다.
서울중앙지검 특수3부(부장 최성환)는 6일 변호사자격 없이 법률사건을 처리한 브로커 181명과 이들에게 명의를 빌려준 변호사와 법무사 등 41명 총 225명을 적발해 57명을 변호사법 위반 등 혐의로 구속 기소하고 165명을 같은 혐의로 불구속 기소했다고 밝혔다.
이 중에는 상담의뢰자들을 모집해 브로커에 공급한 광고업자 2명과 브로커와 짜고 상담의뢰자들에게 수임료 대출을 전문으로 해 준 대부업자 1명도 포함됐다. 소재파악이 안된 3명에 대해서는 기소중지 처분했다.
불법 개인회생 대리로 562억 받아 챙겨
검찰 조사결과 브로커들은 경제적으로 어려워 개인회생이나 파산신청을 하는 사람들을 대상으로 고리의 대출을 받게 한 뒤 대출금을 수임료 명목으로 송금 받고 변호사 명의를 빌려 개인회생 등 사건 3만5848건을 처리하면서 총 562억원 상당의 수임료를 받은 것으로 드러났다.
이번에 기소된 개인회생 브로커는 168명이다. 이 중 53명이 구속 기소됐다. 이들은 변호사 명의를 빌린 다음 의뢰인과 수임계약을 체결하고 변호사 없이 개인회생 사건 총 3만4893건을 처리하고 수임료 명목으로 546억원을 받아 챙겼다.
경매브로커 13명도 변호사 명의를 빌려 법무법인 분사무소를 개설하고 변호사 없이 입찰관련 사무를 대리해 총 955건의 경매 사건을 처리하고 총 16억원을 수임료 명목으로 받았다.
브로커들에게 명의를 빌려준 판·검사 출신 변호사를 포함한 변호사 33명과 법무사 8명도 재판에 넘겨졌다. 변호사들 중 판사 출신은 1명, 검찰 출신은 3명으로, 모두 2004년 이전에 개업한 것으로 파악됐다.
변호사들 '자릿세' 명목으로 월 100만원씩 받아
이들은 브로커들에게 명의를 빌려주고 한 달에 '자릿세' 명목으로 100~300만원씩을 받고, 브로커가 처리하는 사건 1건 당 '관리비' 명목으로 20만원 안팎을 받아 챙겼다. 변호사와 법무사들이 받은 '자릿세' 등은 총 25억원에 달했다. 검찰은 기소된 변호사들에 대한 징계개시를 대한변호사협회에 신청했다.
변호사법 위반 방조 혐의로 구속 기소된 광고업자 2명은 인터넷 광고를 통해 입수한 의뢰인들의 개인정보를 브로커들에게 제공했으며, 대부업자 1명은 브로커들과 짜고 개인회생 의뢰인들에게 수임료 대출을 해 준 뒤 대출금을 브로커들에게 직접 송금함으로써 변호사법 위반을 방조한 혐의다.
검찰에 따르면 브로커들에게 사건을 맡긴 의뢰인들은 고리의 대출금과 허술한 사건처리로 또 다른 피해를 본 것으로 드러났다. 게다가 법원의 보정명령 조차 이행하지 못해 법원의 개인회생 업무에도 상당한 차질을 주고 있는 것으로 확인됐다.
브로커들 "내가 변호사보다 낫다"
그러면서도 일부 브로커들은 구속된 후에도 "개인회생 신청을 안 해 준 것도 아닌데 무슨 큰 문제가 되느냐"라거나 또는 자신들이 변호사 못지 않은 전문성을 갖고 있다고 주장하는 등 죄의식 조차 없었다.
검찰 조사 결과 이번 사건은 장기간 지속 중인 변호사업계의 불황이 직접적인 원인으로 분석됐다. 적발된 변호사 중에는 사무실 임차료 조차 낼 돈이 없어 브로커가 마련한 사무실에 방 하나를 제공받는 대가로 명의를 빌려주는 등 브로커에게 '얹혀 지내는' 변호사도 상당수 있는 것으로 확인됐다.
또 브로커가 사무실을 차려 놓고 변호사를 고용한 뒤 법무법인을 개설해 개인회생팀을 운영하면서 지방 분사무소까지 만들어 거액의 수임료를 챙긴 '기업형 경매브로커'들도 상당수 있는 것으로 검찰 조사에서 드러났다.
검찰 관계자는 "변호사들이 관심을 두지 않는 사이 브로커들이 광고업자, 대부업자 등과 연계해 구조적 범행체계를 구축했고, 브로커들은 막강한 영업력을 바탕으로 개인회생 사건을 휩쓸고 있다"고 지적했다.
이 관계자는 또 "브로커들의 조직적 범행으로 브로커들이 개인회생 관련시장을 장악하고 있다"며 "견고한 진입장벽으로 인해 오히려 변호사들의 시장진입이 쉽지 않은 상황"이라고 설명했다.
변호사들 시장진입조차 어려워
검찰에 따르면, 개인정보 도용이나 유용에 대한 강력한 단속 이후 설 자리가 좁아진 대부중개업체 종사자들 상당수가 최근 개인회생 브로커로 업종을 전환한 것으로 파악됐다.
이번 사건과 관련해 김한규 서울지방변호사회장은 “법을 위반한 변호사들이 엄정한 처벌을 받아야 하는 것은 당연하다”면서도 “브로커에게 고용당해 범법행위를 하는 변호사들이 있는가 하면, 홍만표·최유정 변호사 등 전관들이 브로커를 운용해 100억 이상의 수임료를 받는 등 변호사들의 범죄 수준도 양극화 되고 있다”며 씁쓸해 했다.
김 회장은 또 "이번 사건은 변호사 업계의 불황과 수임의 양극화, 브로커들의 변호사 직역 잠탈이 극에 달해 있음을 보여준 사건"이라며 "시급한 대책이 필요하다"고 지적했다.
자료/서울중앙지검
최기철 기자 lawch@etomato.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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