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뉴스토마토 이우찬기자] 헌법재판소가 '통합진보당 결정내용 사전 유출 의혹'에 대해 사실이 아니라고 적극 해명에 나섰다. 그러나 부실한 조사 결과와 법원에서 관련 사항에 대한 재판을 앞두고 있는 가운데 의혹의 증거가 된 고 김영한 전 민정수석의 비망록에 대한 해석을 내놓은 것을 두고 부적절하다는 지적이 나오고 있다.
헌재는 11일 통합진보당 해산결정 사전 유출의혹에 대해 자체 경위조사위원회가 조사한 결과를 발표했다. 진상조사위는 이정미 재판관을 위원장으로 김이수 재판관과 김용헌 사무처장이 위원으로 나섰다. 총 4차례에 걸친 회의를 실시했으며 박한철 소장과 재판관들을 상대로 개별 면담을 했다. 헌재 관계자는 또 경위조사위가 2014년 8월1일 이후 통화내역과, 정문 방문일지 등 교제, 방문자 등 경위를 확인할 수 있는 자료를 다각적으로 조사했다고 설명했다.
자체 조사의 한계는 통화내역부터 보인다. 조사위는 자체 확보한 청와대 비서실 등 연락처가 재판관들 휴대폰 발신·수신 내역에 있는지 비교·조사했다. 휴대폰 통화내역에 대해 헌재 관계자는 “최근 1년간 통화내역을 요청해도 통신사 보관 기간은 1년밖에 안 된다”며 “그 부분을 확인할 수 없었다”고 말했다. 업무일지 속 통진당 해산결정 사전 유출 의혹은 2014년 12월의 일이다. 2년이 지난 상황에서 통화내역 조회는 무의미하다는 지적이다. 재판관실 일반 연락처와 헌재 내선번호에 대한 통화기록에 대해서는 KT에서 1년 동안만 보관해 기술적으로 확인을 하지 못했다는 게 헌재의 해명이었다.
헌재는 또 “12월17일자 메모는 청와대비서실이 수집한 각종 정보의 분석에 따른 추론으로 보는 것이 보다 합리적인 해석일 것”이라고 주장했다. 김 전 수석이 남긴 업무일지가 사실이 아닌 추론에 불과하다는 주장으로 헌재가 업무일지의 증거능력을 부정하는 취지로 읽힐 수 있는 대목이다. 업무일지에는 박근혜정권의 ‘왕실장’ 김기춘 전 실장이 언론자유탄압·사법부 통제·문화계 블랙리스트 관리 등을 지시한 정황이 다수 담겨 있는데, 이는 각종 재판에서도 증거로 활용되고 있다. 헌재가 업무일지를 추론에 불과하다고 결론을 내린 꼴이 돼 업무일지의 증거능력에 반대하는 측에 무기를 쥐어준 셈이다. 김 전 실장은 국정농단 청문회에서 “노트(업무일지)를 작성할 때 작성하는 사람의 주관적인 생각도 가미됐을 수 있다고 생각한다”고 말했다. 헌재 관계자는 “김 전 수석의 업무일지가 신빙성이 있다고 해도 통진당 해산결정 사전 유출은 사실이 아니라는 취지”라며 “업무일지의 증거능력을 판단한 것은 아니다”라고 강조했다.
한편 헌재 관계자는 이날 브리핑에서 "통진당해산 사건은 그 중요성과 파장에 비춰 철저한 비밀과 보안을 유지하기 위해 재판관들의 사전 합의에 따라 선고당일 최종평의와 표결을 하기로 했다"며 "선고당일 오전 9시30분에 최종표결을 하고, 9시40분쯤 결정문에 대한 서명을 완료해 10시5분쯤 선고했다"고 설명했다. 이어 "따라서 최종결론은 재판소장을 포함한 재판관 등 어느 누구도 미리 알 수 없었다"고 강조했다.
헌재는 또 “지난달 6일자 일부 언론에서 통진당 해산사건에 대한 재판정보의 사전 유출의혹을 보도한 바 있었고, 당시 조만간 헌법재판소에 탄핵심판이 청구될 것이 예견되는 상황이었다”며 “헌재 재판의 공정성에 대해 의혹이 제기되는 것 자체가 앞으로 하게 될지도 모르는 탄핵심판 재판의 신뢰성에 손상을 미칠 우려가 있다고 판단, 바로 경위조사위원회를 구성했다. 그 후 관련된 정보공개청구가 들어왔다”고 말했다. 김 전 수석이 남긴 업무일지 2014년 12월17일자에는 김기춘 당시 비서실장을 뜻하는 ‘長’(장)이란 글자 아래 ‘정당 해산 확정, 비례대표 의원직 상실’이라고 쓰여 있다.
이에 대해 헌재 관계자는 "오히려 김 전 수석의 기록이 신빙성이 있다는 전제했다"며 "증거능력을 부정하면 비망록 자체를 근거로 판단할 수 없다. 언급도 할 수 없다"고 강조했다. 이어 "비망록 중 해당부분이 사실로 인정되고 증거능력이 인정된다고 하더라도 해당부분이 다른 기록과 모순되는 점이 있다는 취지로 결론을 낸 것"이라며, "비망록에 대한 증거능력에 대해 판단한 것이 아니다"고 재차 강조했다.
배보윤 헌법재판소 공보관이 11일 오후 서울 종로구 헌법재판소에서 통합진보당 해산 심판의 결론이 청와대에 사전 유출됐다는 의혹에 대한 공식 해명 브리핑을 발표하고 있다. 사진/뉴시스
이우찬 기자 iamrainshine@etomato.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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