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터뷰)봄여름가을겨울·빛과소금 “우리는 음악 순혈주의자들”
봄여름가을겨울 김종진, 빛과소금 33년 만에 합작 앨범
고 김현식, 유재하, 전태관 기리며…“협업은 죽기 전의 의무 같은 것”
2019-12-30 12:00:00 2019-12-30 12:00:00
[뉴스토마토 권익도 기자] “걷는 것은 인생과 비슷하다는 생각이 들었어요. 늘 헤어질 순간을 맞닥뜨려야 했으니까요….”
 
지난달 27일 서울 마포구 홍대 인근의 소규모 공연장 노라 스테이지. 봄여름가을겨울의 김종진(57)이 기자의 손을 따뜻하게 잡아주며 말했다. 지난해 이날, 평생의 음악적 동료이자 친구 고 전태관(봄여름가을겨울 드러머)을 하늘로 보낸 그는 “올해 데뷔 30주년을 마치고 곧장 산티아고 순례길에 올랐다”며 “걸으며 줄곧 누군가와의 헤어짐을 생각했지만, 그건 새로운 음악 여정을 일으키는 활력이었다”고 초탈한 듯 웃어 보였다.
 
이날 김종진은 ‘빛과소금’ 장기호, 박성식과 함께 새 앨범 ‘Re:union(동창회)’을 냈다. 세 사람이 다시 뭉친 건 1986년 ‘김현식의 봄여름가을겨울’ 이래 33년 만. 밴드 주축이던 김현식과 유재하, 전태관이 세상을 떠난 뒤 셋의 협업은 “이 세상에서 사라지기 전 끝내야 할 의무”처럼 다가왔다. 대학 교단에서 분필을 쥐고 있던 두 사람이 결국 김종진의 ‘벼락 제안’을 받아들였다.
 
'봄여름가을겨울' 가수 김종진(가운데), '빛과소금' 박성식(왼쪽), 장기호가 '봄여름가을겨울' 故 전태관 1주기인 27일 오후 서울 서교동 더노라스테이지와이에서 미니앨범 '봄여름가을겨울 리:유니언 위드(Re:union with) 빛과소금' 발매 기자간담회를 열고 질문에 답하고 있다. 사진/뉴시스
 
세 사람은 앨범 제작 3주 전 서강대 인근의 한 스튜디오에 모였다. 1950년대 아날로그 악기와 장비를 세팅해 놓은 그 곳에서 잊고 있던 ‘음(音)’의 대화를 시작했다. 앨범 제목 ‘동창회’처럼 오랜 친구 간 담소만큼이나 정겨운 시간. “무턱대고 연주했는데도 33년의 간극이 느껴지지 않았어요. 서로 말 대신 악기로 얘기하며 ‘정말 행복하다’ 느꼈습니다.”(김종진)
 
앨범에는 김종진, 장기호, 박성식 세 사람이 각자 쓴 3개의 신곡과 봄여름가을겨울의 ‘보고 싶은 친구’, 빛과 소금의 ‘오래된 친구’ 리메이크 버전 2곡이 담겼다. 봄여름가을겨울식 퓨전재즈 기반에 빛과소금식 달콤함을 버무린 음악은 6070년대 아날로그 분위기와 당대의 낭만 정서를 아우른다.
 
“우리 각자가 가진 음악의 장점, 요즘 시대에 없는 요소가 뭘까를 고민했습니다. 봄여름가을겨울, 빛과소금 색깔이 잘 어우러진 음반이 나왔다고 생각됩니다.”(장기호) “조금 아쉬웠던 부분은 전태관씨가 참여했다면 하는 부분이었어요. 작업 내내 서운하고, 보고 싶고, 그리웠습니다.”(박성식)
 
‘봄여름가을겨울’ 김종진이 ‘빛과소금’ 장기호, 박성식과 함께 낸 새 앨범 ‘Re:union(동창회)’. 사진/봄여름가을겨울엔터테인먼트
 
앨범을 재생하는 순간 곁을 스쳐간 인연들 얼굴이 아른거린다. 아련하고 코 끝 시린 헤어짐의 순간들, 기억들의 중첩. 동료를 하늘로 먼저 보낸 이들은 만남과 헤어짐, 생과 사를 이 앨범에 담았다. 이를 테면 김종진이 작사, 작곡한 ‘동창회’는 동창회에 갔다 들은 친구의 부고 소식에 관한 노래. 앞뒤로 녹음한 카세트테잎과 라디오, 분식집 정경이 오가는 와중 ‘우리 다시 또 만나기를’이라는 김종진의 노랫말이 덤덤해서 슬프다.
 
“브라보 마이 라이프가 삶에 관한 노래라면 이것은 죽음에 관한 노래입니다. 살다 보니 이제는 만남 보다 헤어짐의 경험이 많은 나이가 됐어요. 앨범은 작별에 관한 이야기가 많아요.”(김종관)
 
‘널 보내던 날/ 난 너무 힘겨웠어’(곡 ‘난 언제나 널’의 가사)로 시작하는 앨범은 김종진과 장기호가 서로 바꿔 부른 오랜 친구 이야기를 지나 박성식이 쓴 마지막 곡 ‘행복해야 해요’에 이른다. “우리는 지금 행복을 빼앗아 가는 시대에 살고 있다고 생각합니다. 모든 사람들이 행복해졌으면 좋겠다는 바람을 담은 노래입니다.”(김종진)
 
'봄여름가을겨울' 가수 김종진(가운데), '빛과소금' 박성식(왼쪽), 장기호가 '봄여름가을겨울' 故 전태관 1주기인 27일 오후 서울 서교동 더노라스테이지와이에서 서로의 손을 포개고 있다. 사진/뉴시스
 
고 김현식은 “음악 밖에 모른다”는 이 ‘순혈주의자들’ 가슴 안에 여전히 살아 있다. “음악이 수학처럼 딱딱 맞아야 하는 건 아니다”며 가르침을 주던 30대 청년의 모습은 어제 일처럼 생생하다. “세월이 흐르면서 음악은 정말 그렇게 하는 거구나 알아가고 있어요. 돌아보면 우리가 50대에 깨달을 수 있는 것을 형은 이미 30대 때 알았던 셈이죠.”(김종진) “내년에는 김현식 형님의 작품을 갖고 우리 색으로 음반작업을 해보는 것도 좋을 것 같아요.”(박성식)
 
세 사람은 이날 함께 경기도 용인 ‘평온의 숲’에 안장된 전태관의 묘를 찾았다. 돌아오는 길 세 사람의 손이 포개진 사진이 그려진 이번 앨범을 함께 들었다. “친구들이 정말 절실하고 그립습니다. 그 포즈가 어떤 말보다 더 의미 있을 것 같았어요.”(김종진)
 
권익도 기자 ikdokwon@etomato.com
 
이 기사는 뉴스토마토 보도준칙 및 윤리강령에 따라 김기성 편집국장이 최종 확인·수정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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