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리뷰)‘인간’ 리암 갤러거 “나는 죽는 날까지 오아시스야”
오아시스 해체 후 홀로서기까지…리암 갤러거 삶 다룬 다큐
폴 매카트니 영상 작업한 감독…10년간 찍고 2시간으로 압축
오아시스 재결성에 관한 알듯말듯 화법, 12일 국내 첫 개봉
2020-03-09 18:12:37 2020-03-09 22:01:48
[뉴스토마토 권익도 기자] *해당 기사에는 다큐멘터리 영화 ‘리암 갤러거’의 스포일러가 포함돼 있습니다.
 
거칠면서도 당찬 기타리프로 앨범 문을 열어젖히는 ‘Hello’. 게리 글리터의 히트곡 ‘Hello, hello I'm back again’의 코러스를 멋지게 비틀며 그들은 거만한 시작 인사를 건넨다. 이어지는 ‘Wonderwall’은 첼로 소리와 함께 상상 속 구원자를 조용히 갈구하고 뒤이어 거지들도 따라 부른다는 영국인들의 성가 ‘Don't look back in anger’가 울려 퍼진다.
 
비틀즈에 ‘We can work it out’이 있다면 자신들에게는 이 곡이 있다며 추켜세운 ‘Some might say’와 서사적인 구성으로 심금을 울리는 ‘Cast no shadow’. 헬리콥터의 웅장한 소리와 함께하는 앨범 타이틀곡 ‘Morning Glory’가 삶을 긍정하다 보면 어느새 본 헤드가 듣고 눈물을 질질 짰다는 ‘Champagne Supernova’에 이른다. 여기서 노엘 갤러거, 폴 웰러는 역사에 길이 남을 만한 기타 솔로를 연주하며 앨범을 마무리한다.
 
1995년 영국에서 발매된 ‘Morning Glory?’. 전작 ‘Definitely Maybe(1994)’에 이은 앨범은 너바나 ‘Nevermind’, 라디오헤드 ‘OK Computer’와 더불어 시대를 대표한 희대의 명반으로 꼽힌다. 세계적으로 2200만장의 판매고를 기록한 이 앨범의 주인공은 ‘세기말 비틀즈’라 불리던 영국 록 밴드 오아시스. 블러와 함께 브릿팝 부흥을 이끈 이 밴드의 중추는 말콤 영, 앵거스 영(AC/DC 멤버들) 만큼의 ‘형제 콤비’로 유명한 노엘, 리암 갤러거였다.
 
노엘 갤러거(왼쪽)과 리암 갤러거. 사진/뉴시스·Jill Furmanovsky
 
영국 맨체스터의 가난한 노동자 집안 출신인 이들은 술꾼이던 아버지로부터 매일 폭력을 당하면서도 작은 방, 작은 침대에서 꿈의 노래들을 썼다. 밝은 톤을 중심으로 전개하는 멜로디와 ‘지글’ 대는 기타의 후주 이합집산은 “영원히 살고 싶다(곡 ‘Live Forever’)”던 그들의 꿈을 전 세계에 유성우처럼 흩뿌렸다. ‘F’로 시작하는 거침없는 언행과 막연하지만 당당한 자신감은 이들의 상징. “고기 많이 먹고 담배 많이 피고 맥주 많이 마시라”는 이들의 건강 비결은 오늘날 ‘밴드맨’을 꿈꾸는 수많은 이들에게 성경 속 ‘잠언’처럼 오르내린다.
 
2009년 서로 아끼는 기타를 부수고 형제는 각자의 길을 걷고 있다. 지난해 본지 기자는 노엘과의 대면 인터뷰에서 “오아시스 재결성 가능성은 없다”는 대답을 들었다. 그러나 둘의 재결합 설은 해마다 수면 위로 떠오른다. 여전히 팬과 언론은 그들의 영광의 과거를 추억하고 그들 역시 공연 때마다 오아시스 명곡들을 추려 들려준다. 
 
‘노엘 답변대로 오아시스는 정말 끝난 걸까. 다시 뭉칠 가능성은 없을까….’
 
다큐멘터리 '리암 갤러거' 보도 스틸컷. 사진/NK컨텐츠
 
오는 12일 국내에 개봉하는 록 다큐멘터리 ‘리암 갤러거’를 미리 본 결과, 일말의 재결합 가능성은 있을 수 있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다큐는 카메라에 선 리암 갤러거(오아시스 보컬·프론트맨)가 11년 전 ‘그 사건’에 관해 입을 열며 시작된다. 전후 바로 이어 붙는 영상은 록 밴드 오아시스가 해체되던 그 날, 그 순간의 회고다. 
 
관객들이 어둠 속 황망한 표정으로 서 있다. 백색 조명 아래 무대 위에는 악기만 덩그러니 남아 있다. 2009년 8월28일 프랑스 파리에서 열린 ‘록 엉센(Rock en Seine)’ 뮤직 페스티벌. 이날 백스테이지에서 서로 아끼던 기타를 부수고 끝내 무대에 오르지 않은 갤러거 형제들은 각자의 길을 선언했다. 당시의 극렬한 싸움, 격한 감정이 아직도 뜨겁게, 한편으론 아련하게 스크린 밖으로 튀어나온다.
 
다큐 초반 리암은 특유의 ‘악동’ 같은 입담을 폭격처럼 쏟아낸다. “형(노엘 갤러거) 전화번호는 지금도 없다”며 “만나면 곡괭이로 찍어 버리고 싶다”고 한다. 하지만 “나는 죽는 날까지 오아시스야”라고 덧붙이는 대목에서 그 시절의 자부심, 그리움도 엿보인다. 런던 올림픽 폐막식 무대 뒤에서 만난 퀸의 브라이언 메이에게 리암은 “형과는 잘 만나지 않고 있다. 벌써 안본지 몇 년이 됐다”고 꼬마 아이처럼 털어놓는다. 형과 어린 시절 함께 지내던 작은 방을 카메라 앞에 직접 소개하기도 한다. 
 
다큐멘터리 '리암 갤러거' 보도 스틸컷. 사진/NK컨텐츠
 
다큐는 중반부터 현재와 과거를 오가며 ‘오아시스 이후의 리암’을 그리는 데 집중한다. 전 오아시스 멤버들과 결성한 비디아이의 실패, 사생활 문제와 이혼, 미디어의 날선 보도…. 음악 커리어가 사실상 끊긴 상황에서 노엘에 밴드 재결성을 요청하지만 그 마저 거절당하는 리암 모습은 애처롭기까지 하다.
 
여자친구이자 매니저 데비 귀더의 도움으로 재활한다. “사람을 죽인 것도 아닌데 왜 그러고 있냐”는 말을 듣고 리암은 다시 기타를 잡는다. ‘JJ피넌’이라는 아일랜드 술집에서 연주한 곡 ‘BOLD’는 유튜브를 타고 전 세계 퍼져간다. 주변 뮤지션과 함께 협업해 만든 솔로 1집 ‘As You Were(2017)’은 그를 다시 조명 아래 올려놓는다. 지난 10년간 찰리 라이트닝 감독이 리암과 동고동락하며 토막 영상을 찍어 합쳤다. 폴 매카트니, 롤링스톤스, 더 후 등의 영상을 작업한 이 감독은 2인칭 앵글로 리암 뒤를 바싹 따라붙는다. 리암과 가족의 속내, 무대 뒤 정경은 리암의 홀로서기 일화를 거쳐 훗날 오아시스 재결성에 관한 알듯말듯한 물음에 닿는다.
 
다큐멘터리 '리암 갤러거' 보도 스틸컷. 사진/NK컨텐츠
 
다큐는 재결합에 관한 명쾌한 해답을 제시하지는 않지만 일말의 가능성은 비춘다. 매니저 귀더는 “리암이 노엘을 여전히 그리워한다”며 눈물 짓는다. 노엘과 리암의 어머니 페기 갤러거는 “해가 바뀌면 노엘이 돌아올 것”이라 힘을 준다. 영국의 세계적인 음악잡지 NME 역시 이 다큐를 두고 “노엘에게 보내는 독 묻은 편지”라면서도 둘의 화해 가능성에 대해 조명했다. 
 
무엇보다 밴드 오아시스의 향수가 있는 이들에게는 흥미로울 장면들이 많을 것이다. 리암에 관해 갖고 있던 선입견들은 ‘인간 리암’과 맞닥뜨리는 순간 상당 부분 깨져 나간다. 비디아이 실패 이후 팔마로 가 매일의 고뇌를 되씹거나 아들들에게 요크셔 티를 타주는 장면이 특히 그렇다. 어머니와 집에 앉아 “천성이 착한 애”라는 얘기를 듣는 장면도 그간 언론에서 비춰지지 않던 리암의 새로운 모습들이다. 
 
리암 뒤를 바싹 따라 붙는 카메라 기법에서는 퀸 일대기를 그린 영화 ‘보헤미안 랩소디’를 보는 듯한 환영도 살짝 아른 거린다. 다만 '보헤미안 랩소디'와 다르게 인터뷰만으로 전개하는 영상은 팬이 아니라면 살짝 지루할 수도 있다. 
 
다큐멘터리 '리암 갤러거' 보도 스틸컷. 사진/NK컨텐츠
 
권익도 기자 ikdokwon@etomato.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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