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뉴스토마토 박용준 기자] “전에는 밖에 나와도 하수구 냄새도 너무 심하고 동네가 지저분해서 힘들었어요. 이젠 냄새도 하나도 안 나고 깔끔해졌어요. 꼬마도 뛰어놀고, 청년들도 다니고…”
16일 서울 마포구 연남동 세모길에서 만난 성말용(92) 할머니는 다른 동네 할머니 두 명과 함께 평상에 앉아 모처럼 내리쬐는 봄햇살을 맞고 있다. 바로 뒤엔 동네 꼬마가 공을 갖고 놀고 있었고, 더 뒤엔 세련된 카페에서 청년들이 커피를 마시고 디저트를 즐기고 있다.
이 동네에서만 60년 넘게 산 성 할머니에게도 세모길의 변화는 신기한지 인사를 건네는 행인에게 “동네가 밝아졌다”, “우리동네 좋아졌다”고 자랑을 늘어놓았다. 성 할머니는 경의선숲길 생기기 전부터 알고 지낸 동네 이웃들이 더이상 연탄 때우지 않아도, 비오면 역류에 악취 걱정하지 않아도, 방치된 화단과 쌓인 쓰레기를 보지 않아도 되니 마음이 놓인단다.
성말용 할머니가 서울 마포구 연남동 세모길에서 평상에 앉아 다른 할머니들과 대화를 나누고 있다. 사진/박용준 기자
경의선숲길 끄트머리에서 경의중앙선 석축과 만나는 연남동 세모길은 1960년대 토지구획 정리사업으로 조성돼 1985년 지어진 아파트를 제외하면 도시가스가 들어오지 않아 60여채가 연탄과 기름 보일러를 때워야 했다. 노후 하수관으로 악취와 역류가 빈번했지만, 2014년 재건축정비구역에서 해제되면서 주민 고통만 쌓여갔다.
2019년 세모길이 골목길 재생사업에 선정된 후 가장 먼저 한 일은 주민들의 이야기를 들었다. 47명이 적극적으로 주민협의체에 참여했고 10여차례의 회의 결과, 하수관로 정비, 도시가스 설치, 도로 개선, 담장 정비, CCTV 설치 등이 차곡차곡 정리됐다.
연남동은 홍대 상권의 핵심으로 자칫 사업결과에 따라 연남동 상권이 이 곳까지 참투할 경우 기존 주민들이 삶의 터전을 잃는 젠트리피케이션이 우려됐다. 이에 주민협의체와 마포구·서울시는 방문객보다 주민이 좋은 동네’를 만드는데 초점을 맞췄다.
작년 한 해동안 노후돼 금이 간 주택 담장을 바꾸고, 노후 하수관로와 도시가스를 정비해 보도블록도 새로 깔았다. 모두 개인 소유의 소규모 필지라 사용승인을 받는 과정이 복잡했지만, 처음에 주저하던 주민들도 동네가 달라진다는 소리에 하나둘 힘을 보탰다. 엉망진창이던 화단은 그 이름에 맞게 새 모습을 찾았고, 노인들이 걷기 힘들어하던 석축은 배수기능까지 갖춰 새로 정비했다.
작년 연말 세모길의 모습이 바뀌자 불과 3개월 남짓한 시간이 지났지만 이미 아기자기한 카페와 상점이 외곽부에 생기면서 마을에 새 활력을 주고 있다. 새로 온 세입자도 주민 공동체에 참여하기 시작했으며, 바뀐 골목을 가꾸기 위해 주민들간의 약속도 정하고 있다. 골목이 예쁘다며 안까지 걷는 행인들도 생기니 이제는 ‘죽어가던 동네’라는 오명에서 벗어난 셈이다.
서울시는 2018년부터 골목길 재생사업을 46곳에서 진행 중으로 연남동 세모길을 비롯한 10곳은 완료했다. 골목길 재생은 선 단위 소규모 재생사업으로 한 곳당 10억원을 들여 슬럼화를 막고 주민들의 정주여건을 개선한다.
모종린 연세대 교수는 “마을 재생이 많은 사람의 참여와 오랜 시간이 걸린다면 마을의 핵심인 골목길부터 다니고, 지내기 쉽도록 바꾸자는 얘기”라며 “골목길이 바뀌면 동네가 바뀐다”고 말했다.
16일 골목길 재생사업을 마친 서울 마포구 연남동 세모길. 사진/박용준 기자
박용준 기자 yjunsay@etomato.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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