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뉴스토마토 백주아 기자] 한국전지산업협회가 '사용 후 배터리 동맹(얼라이언스)'을 구축하려는 움직임을 두고 기업들 사이에서 불만이 터져나오고 있다. 기업의 독자적인 사업 영역에 대해 전지협회가 특정 지방자치단체를 중심으로 동맹 참여를 유도하고 있다는 지적이다.
14일 업계에 따르면 한국전지산업협회는 내년 3월부터 '사용 후 배터리 산업 활성화를 위한 시범 사업'을 추진할 계획이다. 지난 2011년 설립된 전지협회는 산업통상자원부 산하 사단법인 기관으로 이차전지 관련 100여개 이상 기업이 회원사로 가입돼 있다.
한국전지산업협회는 지난 8~9일 전라남도 나주 중흥골드리조트에서 '폐배터리 얼라이언스(동맹) 구축'을 위한 산업기술 정보 공유 세미나를 개최했다. 사진/한국전지산업협회
협회 측의 동맹 제안에 일부 기업들은 난처한 입장을 보이고 있다. 각 사가 미래 유망 산업에 대해 독자적으로 사업 영역을 구축해 나가고 있는 가운데 협회가 주축이 돼 산업을 이끈다는 것은 지나치다는 반응이다. 일각에서는 협회가 도움은커녕 오히려 방해만 하고 있다는 비판도 있다.
지자체를 중심으로 관련 산업을 키우려는 것도 의아하다는 입장이다. 입지 조건 상 전지 관련 기업체가 모인 지역도 아닌 데다가 특정 지자체를 중심으로 산업을 활성화하려는 의도가 의심스럽다는 것이다. 현재 전지협회는 전남 나주시에 ‘전기차(EV)·에너지저장장치(ESS) 사용후 배터리 리사이클링 산업화 센터’ 와 광양시에 ‘친환경 리튬이차전지 재활용 센터'를 구축하고 있다. 나주와 광양 센터는 각각 내년 2월, 12월에 완공된다.
업계 전문가는 "배터리 3사든 완성차 업체든 폐배터리 관련 사업은 유럽·미국·중국 등 전기차 3대 시장이 있는 곳으로 나가는 게 확장 측면에 훨씬 유리하다"면서 "지자체를 끌어들이는 것은 정치적 의도가 다분한 것으로 보여진다"고 말했다.
전지협회 나주센터 조감도. 자료/한국전지산업협회
특히 업계는 협회 측에 대놓고 불만을 제기할 수 없는 분위기를 전했다. 정부 국책 과제나 연구 개발(R&D) 사업 참여에 불이익이 있을 수 있는 만큼 일방적 제안에 기업들이 '벙어리 냉가슴'을 앓고 있다는 설명이다. 실제 전지협회 관계자는 <뉴스토마토>와의 통화에서 "어느 기업이 불만을 제기하는지 기업 이름을 밝히라"면서 "기업들 스스로 끌고 가지 못하는 부분에 대해 협회가 역할을 하겠다는 것에 오히려 고마워해야 하는 것 아닌가"라는 반응을 내놨다. 다만 그는 "4대 그룹 동맹 결성 관련 보도 이후 기업들이 격하게 반응하고 있는 것은 사실"이라며 "세미나 개최 후 기업과 협의를 해나가는 단계로 회원사 동의 없이 독단적으로 하는 일은 없을 것"이라고 말했다.
일련의 상황에 주무부처인 산업부의 반응도 통상적이지 않다. 산업부 전자전기과 관계자는 "어떤 목적이나 의도가 있는 것은 아니었던 것 같고 협회 차원에서 잘못된 내용을 바로 잡으려 노력하는 만큼 잘 좀 봐달라"고 했다. 협회 측 전횡을 손놓고 바라 보고 있는 셈이다.
전문가들은 전지협회가 추진하는 사업이 오히려 사용 후 배터리 산업 발전을 저해할 수 있다고 경고했다. 기업이 기업하기 좋은 환경을 만드는 역할을 넘어서 배터리 후방 산업에 간여하겠다고 나서는 것은 월권이라는 지적이다.
박철완 서정대학교 자동차학과 교수는 "전지협회가 정부 예산을 따내기 위해 애꿎은 배터리 생산 관련 기업을 동원하는 것은 과거 전지조합 때부터 이어져 온 구습"이라며 "최근 10여 년 사이 정부 주도 대형 R&D 사업을 독점했으나 성과가 없어 국감에서 지적을 받는 등 협회 역량 부족에 따른 이차전지 산업 정책 실기와 생태계 문제를 촉발한 책임으로부터 결코 자유로울 수 없다"고 꼬집었다.
국내 최대 협회 한 관계자는 "어떤 협회든 회원사 권익 보호가 가장 큰 존재 이유인만큼 회원사 이익을 해하는 사업을 추진한다거나 회원사 동의 없이 사업을 밀어붙여서는 산업 발전에 걸림돌이 될 것"이라고 말했다.
백주아 기자 clockwork@etomato.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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