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뉴스토마토 권익도 기자] 최근 한 공연 뒤풀이 자리에서 1998년 출생 음악가 신지훈(25) 씨를 만났다. 그가 지난 5월 발표한 데뷔 음반 ‘별과 추억과 시’는 첫 곡(‘스물하나 열다섯’)부터 놀랍다. 어쿠스틱 기타 아르페지오의 유려한 선율 사이 70년대 향수처럼 흩날리는 가사. ‘시간을 되올 수 있다면…’ 되올 수? 되게 하거나 변화시키다를 뜻하는 옛말이다.
“어릴 적부터 산울림 음악을 즐겨 들었어요. 부모님께서 LP로 틀어 주시곤 했거든요. 그 영향을 알게 모르게 받은 것 같아요.”
지난 5월 발매된 여성 싱어송라이터 신지훈 데뷔작 정규 1집 '별과 추억과 시' 음반 커버. 사진=지니뮤직
신디사이저와 브라스, 아이들 합창 코러스가 그려내는 동화 같은 정경(‘구름 타고 멀리 날아’), 오보에, 플루트까지 더해가는 맑은 소리 질감에선 몽글몽글 김창완(68)의 산울림 감성이 피어난다.
1960~70년대 사운드를 소환하는 광경이 이뿐 만은 아니다. 최근 MZ세대 음악가들 중심의 ‘이상 기류’라 해도 좋을 듯하다. 뽕짝과 힙합, 일렉트로닉 댄스 뮤직(EDM)이 난장을 이루는 DJ 겸 프로듀서 ‘250’(이오공·본명 이호형·40)의 신작[뉴스토마토 기사 참조,
(권익도의 밴드유랑)250, ‘뽕’의 도원경으로]은 영국 일간 가디언까지 주목했다.
국내 재즈계 1.5세대 색소포니스트 이정식 씨, 조용필 ‘킬리만자로의 표범’을 비롯해 김국환 ‘타타타’, 최진희 ‘사랑의 미로’ 등을 작사한 김희갑 작곡가, 트로트 전자오르간 대가 나운도 씨와 ‘조용필과 위대한 탄생’에서 활약한 전설적 기타리스트 이중산 씨 등이 참여해 화제다.
특히 앨범 수록곡 ‘나는 너를 사랑해’는 신중현과 엽전들 1집(1973년)의 동명 수록곡을 샘플링한 노래로도 주목받았다. 신중현의 귀기 어린 목소리를 기반으로 멜로디를 짜고 현대적인 힙합풍 비트와 공간감 큰 레코딩 기법을 더해 장송곡처럼 느껴지는 원곡의 음산하고 텅 빈 느낌을 배가했다.
가디언지는 DJ 겸 프로듀서 250의 음악을 ‘케이팝 팬들에게 무시받는 트로트가 힙하게 돌아왔다(scorned by fans of K-pop, trot is making a hip comeback)’고 소개했다. 사진=가디언 캡처
신인 록 밴드 콩코드 ‘초음속 여객기’ 역시 올해 상반기 대중음악계를 돌아볼 때 빼놓을 수 없는 역작. 첫 곡 ‘무지개꽃 피어있네’를 여는 기타 솔로부터 신중현의 ‘미인’ 풍 분위기가 단번에 느껴진다.
콩코드는 1989년생 재즈 기타리스트 오지호(34) 씨의 1인 프로젝트 그룹. 최근 서울 양천구 자신이 운영하는 기타 학원에서 만난 그는 “고교 시절부터 들국화, 산울림, 김민기, 조동진 같은 한국 옛날 가요를 탐험해왔다. 그러다 1년 반 전, ‘신중현과 엽전들’을 듣고 충격에 빠져 ‘내가 하고 싶은 게 이런 것 아닌가’ 생각이 들었다”고 했다. “사이키델릭, 그 안에 즉흥이 있더라고요. 유하게 흘러가는 김정미의 보컬도 너무 좋았습니다. 신중현 음악에 산울림 같은 목소리를 낸다면? 미적으로 아름답겠다 싶었습니다.”
1989년생 재즈 기타리스트 오지호(34) 씨의 1인 프로젝트 그룹 콩코드 '초음속 여객기'. 사진=지호기타뮤직
신작은 전체적으로 7080 사이키델릭의 영향이 두드러진다. 의도적으로 20만∼30만 원대의 저렴한 기타를 써 원테이크 즉흥 녹음에 나섰다. 재즈하듯. 가사를 시처럼 써놓고 수천 번 낭독해가며 느낀 글자 그대로의 높낮이와 운율, 리듬을 선율 삼아 코드를 입혔다. 팬데믹 기간 학원에 틀어박혀 3개월 간. “처음에는 재즈에 주로 활용되는 600~700만원대 쉐도우스키 기타를 써봤는데 그 옛날 사운드가 안 나오더라고요. 최대한 예스러운 소리를 살리려다 보니 나름대로 실험이 된 것 같아요.”
‘무지개꽃 피어있네’는 어릴 적 척추신경이 좁은 병으로 전신마비에 걸릴 뻔했던 경험을 떠올리다 만든 곡. 서서히 옅어지는 무지개처럼 아련하고 먹먹한 소리 결은 무엇을 의미할까. “지금은 완치됐지만 그땐 누군가가 밀기만 해도 정전기가 흘렀거든요. 친구들과 축구도 못하고 줄곧 혼자 앉아 노을 지는 풍경만 보곤 했어요. ‘먼 산 위에 무지개꽃 피어있네’는 저에게 희망 같은 걸 부여하고 싶어 쓴 가사입니다.”
그는 “투박하지만 에너지가 있는 산울림이나 신중현의 음악 스타일을 현대적인 재즈 어법으로 풀어보고 싶었다. 단순히 그들과 똑같은 음악을 한다면 청중들이 제 음악을 듣지는 않을 것이라 생각했다”고 설명했다.
‘이슬방울’은 3년 전부터 앓기 시작한 이명(耳鳴)에 관한 곡. 2016년부터 재즈 밴드 ‘오조 트리오’의 리더로 활약해오던 그가 콩코드를 시작한 것은 이명 때문이기도 하다. 투파이브원 코드(2도-5도-1도로 진행하는 코드진행으로 옛 가요계와 재즈에서 주로 쓰이는 화성)를 중심으로 펼쳐지는 고풍스런 기타 선율이 70년대 LP바에서 튀어나오기라도 하듯 투닥거린다. 후주를 길게 늘어뜨리는 솔로잉은 아방가르드나 프리 재즈까지 탐험해온 그의 이력과 겹쳐진다.
1인 프로젝트 그룹 콩코드의 1989년생 재즈 기타리스트 오지호(34) 씨. 사진=지호기타뮤직
다만, 짧은 듯 긴 듯한 밴딩(넥을 잡고 줄을 위로 올리는 기술)부터 트레몰로(음이나 화음을 규칙적으로 분할하여 빨리 떨리 듯 되풀이하는 주법), 해머링온(망치질 하듯 프랫을 누르는 주법) 같은 사이키델릭 록 특유의 투박한 느낌을 내는 주법들도 놓치지 않는다. “블루스나 록을 뼈대로 하되 재즈를 겹쳐내는 것인데, 나중에는 양쪽이 하나로 수렴 않을까 생각하고 있습니다.”
그는 궁극적으로 이번 앨범을 통해 “나의 이야기를 하고 싶었을 뿐”이라 했다. “레트로 열풍 때문에 음반을 만든 것은 아닙니다. 제 이야기를 통해 각자 자신의 과거를 회상하거나 아련했던, 즐거웠던 부분을 떠올릴 수 있는 시간을 가지면 좋겠다고 생각했어요. 젊은 세대의 레트로 붐 역시 한편으로는 그리움 때문이 아닐까 생각은 해요.”
전곡 즉흥으로 작곡하다 보니 되려 라이브 준비에 애를 먹고 있다. “오히려 제 앨범을 다시 들으면서 멜로디와 코드를 따고 있어요. 드럼과 현악기를 2집에서는 ‘리얼(악기)’로 전환할 생각도 갖고 있습니다. 시리즈 영화 연작을 보면서 어떻게 변화시킬지, 어떤 부분에 통일감을 줄지 연구하고 있어요. 7분 짜리 곡도 도전할 거고.. 이미 곡들은 다 만들었어요.”
밴드 이름 ‘콩코드’는 피천득(1910∼2007)의 수필집 ‘인연’을 뒤적이다 발견한 단어다. “내 음악도 과거로 가는 사운드다 보니까, 과거와 현재를 오가는 교통수단의 의미가 있을 것 같은 거예요.” “이번 음반을 들으면 각자 한 번쯤 떠올려보고 싶은 시간이 분명 있을 거예요. 저는 제 고향 제주를 떠올렸거든요. 뻥 뚫린 하늘과 바다 앞에서 숨을 고르고 갈 수 있는... 자기 안 슬픈 시간들이 있을 텐데, 그런 시간을 돌아볼 수 있는 시간이 있으면 좋겠습니다.”
1인 프로젝트 그룹 콩코드의 1989년생 재즈 기타리스트 오지호(34) 씨. 사진=지호기타뮤직
권익도 기자 ikdokwon@etomato.com
이 기사는 뉴스토마토 보도준칙 및 윤리강령에 따라 김기성 편집국장이 최종 확인·수정했습니다.
ⓒ 맛있는 뉴스토마토, 무단 전재 - 재배포 금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