임윤찬 "누구나 하지 않는 연주…음악적 소외 없도록"
"콩쿠르 우승 '대단한 업적' 아니라고 생각"
"사회적 약자 찾아가는 연주회 할 것"
28일 실황 음반…다음달 10일 리사이틀
2022-11-28 16:23:25 2022-11-28 18:39:16
[뉴스토마토 권익도 기자] 곱슬거리는 검은 머리를 휘날리며 피아노 앞에 선 그가 건반을 두드렸다. 백조처럼 우아하고 기품있는, 그러면서도 애달픈 물빛 같은 선율들은 이날 내리던 가을날의 영롱한 빗방울들과 닮아 있었다.
 
"몇년동안 유행이 된 레퍼토리는 최대한 피하고 싶어요. 몸포우의 곡들처럼, 누구나 하지 않는 프로그램을 연주하고 싶어요."
 
28일 오전 11시 경, 서울 서대문구 금호아트홀 연세에서 열린 기자간담회. 피아니스트 임윤찬(18)이 몸포우(1893~1987) '정원의 소녀들'(Jeunes filles au jardin No.5 from Scenes d'enfants Calme)을 연주 뒤 말했다.
 
올해 6월, 제16회 '반 클라이번 국제 피아노 콩쿠르' 최연소 우승 후 이날 첫 실황 음반 '베토벤, 윤이상, 바버'을 세계 동시 발매한 그다. 
 
지난달 8일, 경남 통영시 통영국제음악당에서 광주시립교향악단(광주시향·지휘 홍석원)과의 협연을 그대로 담은 음반. 베토벤 피아노 협주곡 5번 '황제', 윤이상 '광주여 영원히', 바버 '현을 위한 아다지오'를 비롯해 앙코르로 연주한 몸포우 '정원의 소녀들', 스크리아빈 '2개의 시곡' 중 1번, 음악 수첩 등 3곡이 수록됐다. 
 
콩쿠르 우승을 안겨준 라흐마니노프 대신, 이색적인 곡들로 채운 점이 특기할 만 하다.
 
28일 오전 11시 경, 서울 서대문구 금호아트홀 연세에서 열린 기자간담회. 피아니스트 임윤찬(18)이 몸포우(1893~1987) '정원의 소녀들'(Jeunes filles au jardin No.5 from Scenes d'enfants Calme)을 연주하고 있다. 사진=유니버설뮤직
 
임윤찬은 "작곡가들의 뿌리가 된, 잘 알려지지 않은 곡들을 연주하고 싶다"며 "베토벤의 '황제'를 비롯해 몸포우, 스크리아빈 같은 작곡가들의 곡은 일반 대중들이 잘 모를 수 있다고 생각해 되려 꼭 연주하고 싶다고 느꼈다"고 했다.
 
특히 베토벤 5번 협주곡 '황제'에 대해서는 "작년까지만 해도 제 '부족한 귀'에는 너무 화려하게 들려 1번이나 4번 협주곡 만한 애정이 생기지 않았던 작품"이라며 "그러나 인류에게 큰 시련이 닥치고, 방안에서만 연습하고 나가지도 못하다보니 다른 느낌으로 다가오더라. 자유롭고 화려하기만 한 곡이 아니라 자신이 꿈꾸는 유토피아 혹은 베토벤이 바라본 우주 같은 느낌을 받았다"고 했다.
 
앨범 전체적으로는 최근 코로나 팬데믹이나 전쟁 사태로 희생된 이들을 위한 '애도가'와 같다.
5·18 사태의 슬픔과 자유 투쟁 의지를 표현한 '광주여 영원히'는 바버 '현을 위한 아다지오'와 연결되며, 과거와 오늘의 애도를 잇는 거울 같은 역할을 한다.
 
바버 '현을 위한 아다지오' 때 1~15번이 순서대로 실려있지 않은 점도 이색적이다. 캐나다 출신의 세계적인 피아니스트 글렌굴드의 해석법을 동경해온 임윤찬이 따왔다.
 
"탄생부터 죽음까지의 이야기를 잘 살려낸 재해석이었습니다. 마치 리스트의 소나타 비마이너 첫음과 마지막음을 들은 느낌과 흡사했어요."
 
이날 임윤찬과 동석한 홍석원 광주시향 지휘자는 "오늘날 우리가 좋은 음악을 할 수 있는 것은 결국 누군가의 희생으로 가능한 것이라는 생각이 들었다. 어려운 시기를 지나는, 모든 분들을 위한 애도로 봐달라"고 했다.
 
28일 오전 11시 경, 서울 서대문구 금호아트홀 연세에서 열린 기자간담회. 광주시립교향악단 지휘 홍석원(왼쪽)과 피아니스트 임윤찬(18). 사진=유니버설뮤직
 
홍석원 지휘와 임윤찬이 이번 앨범에 관한 얘기를 나눈 것은 지난해 12월부터다. 홍 지휘는 3일 협주를 하다 "반해버려" 급 제안을 했고, 임윤찬이 흔쾌히 응해 성사됐다. 홍 지휘는 특히 에너제틱하다고만 생각했던 '황제' 2악장이 너무나도 슬프고 처연한 색감으로 새롭게 바뀌어 놀랐다"고 했다. 올해 6월 임윤찬의 콩쿠르 우승으로 이번 실황 녹음은 발매 전부터 세계의 조명을 받았다.
 
이번 실황음반은 세계적인 클래식 레이블 명가 유니버설 산하의 도이치 그라모폰(Deutsche Grammophon, 이하 DG)이 유통을 담당했다. 이날 간담회에는 AFP 등 외신 매체들까지 취재경쟁이 치열했다.
 
임윤찬은 뚝심 있는 피아니스트이자 예술가다. 이날 한 단어씩 느리지만 신중하게 고른 이날 그의 언어들에서 느낀 바다.
 
왜 굳이 솔로·스튜디오 음반이 아니라 협연·실황 음반이었냐는 물음에 "스튜디오 음반은 너무 완벽하게 하려는 강박의 연주나, 때론 누가 치는지 모를 정도의 무난한 연주가 나오는 한계가 있다. 음악의 수많은 가능성을 잃게 한다는 생각이 있었다"고 했다. 
 
관객들, 오케스트라단과 함께 채운 소리들이 "혼자 녹음 했다면 하지 못했을 음악적인 부분들을 더 채워준 느낌"이라고도 덧붙였다.
 
솔로음반은 라흐마니노프 탄생 150주기 기념해인 내년 발표할 예정이다.
 
28일 오전 11시 경, 서울 서대문구 금호아트홀 연세에서 열린 기자간담회에서 피아니스트 임윤찬(18). 사진=유니버설뮤직
 
음악가로서의 '대단한 업적'에 대해서도 "베토벤-모차르트-바흐 등의 전곡을 치거나 콩쿠르에서 우승하는 것이라 생각하지 않는다"고도 했다. 소외된 약자층의 형평 세계, 즉 클래식의 기회를 열어주는 것을 "음악가로서 근본이 되는 일"이라 정의했다.
 
그는 "음악을 못 듣는 사람들을 제 연주회에 부르는 것이 아니라, 제가 보육원이나 호스피스 병동을 직접 찾아다니고 싶다"며 "사회에서 클래식 음악회를 볼 수 없는 분들을 위해 아무런 조건 없이 가고 연주하는 것이 제가 원하고 생각하는 '대단한 업적'"이라 말했다.
 
"그 분들이 모르는 또 다른 우주를 열어주는 것일 수 있다고 봅니다. 저처럼 부족한, 그리고 미숙한 사람이 어쩌면 (그분들에게) 죽기 전 경험하지 못할 것을 드릴 수 있는 것은, 돈 그 이상의 가치를 매길 수 있다고 생각합니다."
 
다음달 10일 오후 5시, 예술의전당 콘서트홀에서는 '임윤찬 피아노 리사이틀-반 클라이번 콩쿠르 우승기념' 공연을 연다. 이번 공연 역시도 콩쿠르 우승 곡들을 요청받았으나, 그는 "그걸 받아들일 수 없었다"고 했다.
 
바흐의 '3성 신포니아'를 비롯, 바로크 시대의 올랜도 기번스, 요한 제바스찬 바흐부터 낭만주의 시대 프란츠 리스트를 무대에 올린다. 
 
"바흐 '3성 신포니아'의 시적인 표현들, 엄청난 비르투오소 같은 플레잉은 이후 베토벤이나, 리스트를 만들어냈다고 생각합니다. 아름다운, 사람들이 잘 연주하지 않는 보석 같은 곡을 연주하고 싶었습니다."
 
28일 오전 11시 경, 서울 서대문구 금호아트홀 연세에서 열린 기자간담회에서 피아니스트 임윤찬(18). 사진=유니버설뮤직
 
권익도 기자 ikdokwon@etomato.com
 
이 기사는 뉴스토마토 보도준칙 및 윤리강령에 따라 김기성 편집국장이 최종 확인·수정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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