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뉴스토마토 유지웅 기자] 국회의 '예산 전쟁'이 그 어느 때보다 극심한 진통을 격을 전망입니다. 내년도 정부 예산안은 '감세'와 '재정건전성'이라는 2마리 토끼 다 잡겠다는 식인데요. 민주당은 정부안을 뜯어고쳐 지역사랑상품권(지역화폐) 발행 등에 새로 예산을 투입하겠다는 방침입니다. 살얼음판 정국 속에 '준예산' 사태에 대한 우려까지 나옵니다.
윤석열 대통령이 지난달 29일 서울 용산 대통령실에서 국정 브리핑 및 기자회견에서 취재진의 질문에 답하고 있다. (사진=연합뉴스)
'전액 삭감' 지역화폐…'재작년' 수준 R&D
4일 정치권에 따르면 정부는 지난달 27일 내년 예산 규모를 올해보다 3.2% 늘어난 677조4000억원으로 확정했습니다. 총지출 증가율의 적정 수준으로 평가되는 경상성장률(4.5%·정부 전망)을 밑도는 수준인데요. 내수 부진 장기화에도 긴축재정에 방점을 둔 겁니다. 윤석열정부 3년간 예산 증가율(12.1%)은 '작은 정부'를 내건 박근혜정부(13.0%)나 이명박정부(20.2%)보다도 낮습니다.
정부가 허리띠를 졸라맨 건 '세수 펑크' 우려 때문입니다. 지난해 56조 원에 이어 올해엔 세수 결손이 30조원을 웃돌 가능성마저 제기되는데요. 이 와중에 정부는 상속세 최고세율 인하 등 대규모 감세안을 담은 세법 개정을 추진하고 있습니다.
민주당은 정부가 의결한 내년도 예산안에 대해 "부자감세, 민생외면, 미래포기가 반영된 예산안"이라며 "책임지고 국회 심사 과정에서 수정되도록 하겠다"며 현미경 심사를 예고했습니다.
가장 치열한 기싸움이 전개될 영역은 지역사랑상품권 예산입니다. 정부는 내년도 예산안에서 지역사랑상품권 예산을 3년 연속 '0원'으로 편성했는데요. 정부는 지역화폐의 소비 진작 효과가 미흡할 뿐 아니라, 각 지방자치단체가 자체 추진하는 사업에 국비를 지원할 수 없다는 입장입니다.
그러나 이 대표의 '집권 플랜'을 조기에 가동한 민주당으로도 물러설 수 없습니다. 지역화폐는 이재명 민주당 대표의 브랜드 정책으로, '25만원 지원법'(2024년 민생회복지원금 지급을 위한 특별조치법)도 전 국민에게 지역화폐를 지급하는 내용을 담고 있는데요. 앞선 2023년·2024년도 예산안 편성 당시에도, 민주당이 반발하면서 예산을 일부를 국회가 되돌리는 일이 반복됐습니다.
민주당은 연구개발(R&D) 예산에 대해서도 '송곳 심사'를 벼르고 있습니다. 정부는 R&D 예산이 29조7000원으로 역대 최대라고 강조하지만, 실상은 2023년 예산(29조3000원)에서 1.4% 상승한 수준입니다. 윤석열 대통령이 "나눠먹기식 R&D는 원점에서 재검토해야 한다"고 지적한 이후 대폭 줄어들었던 예산이 과학계와 여론 비판에 밀려 한 해 만에 되돌아온 겁니다.
민주당은 정부가 역대 최대 규모의 공공주택을 공급하겠다고 밝혔는데, 예산안에는 반영되지 않았다고도 지적합니다. 2025년도 공공주택 예산은 14조9000원으로 편성됐는데, 이는 2024년도의 18조1000억원보다 적습니다.
'긴축재정'에도 늘어난 특활비
윤석열 대통령이 21번의 거부권(재의요구원) 행사한 만큼, 민주당의 예산 압박은 어느 때보다도 공세적일 걸로 보입니다. 특히 '특수활동비'가 쟁점이 될 가능성이 큰데요. 특활비 사용 내역은 언제나 정치 공방의 불쏘시개였지만, 이번에는 그 수준을 뛰어넘을 전망입니다. 민주당이 검찰에 각을 세우고 있기 때문입니다. 당내에선 "자료를 제출하지 않으면, 검찰 특활비는 전액 삭감해야 한다"는 말까지 나옵니다.
앞서 진성준 민주당 정책위의장도 지난달 29일 당 워크숍에서 '정부 특활비'를 언급하며 "불요불급한 예산을 '악' 소리 나게 삭감하겠다"고 밝습니다. 예산심사 과정에서 특활비는 물론 정보보안비, 안보비 등 유사한 성격의 예산에 대한 검증도 거세질 전망입니다.
실제 2025년도 예산안에서 '특활비'와 '유사 특활비'(안보비·정보보안비) 예산을 합치면 1조2110억3000만원으로 올해보다 526억8000만원(4.5%) 늘었습니다. 내수 경기 부진에도 재정건전성을 앞세워 내년도 예산안을 긴축한 정부가 권력기관의 '쌈짓돈'으로 활용된다는 비판을 받는 특활비 규모는 오히려 늘린 겁니다.
여야 입장이 첨예하게 대립하면서 연말 예산안 처리도 쉽지 않을 것이라는 관측이 나옵니다. 국회 선진화법이 시행된 이후 가장 늦은 예산안 처리 기록은 2022년 12월24일입니다. 지난해엔 이보다 4일 이른 12월21일에 예산안을 넘겼습니다.
유지웅 기자 wiseman@etomato.com
이 기사는 뉴스토마토 보도준칙 및 윤리강령에 따라 최신형 정치정책부장이 최종 확인·수정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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