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뉴스토마토 이범종 기자] 21만751명. 지난 10월 헌정 사상 최대 인원이 낸 헌법소원 청구 대상은 다름 아닌 '게임법'입니다. 이는 지난 2008년 온 나라를 뒤흔든 미국산 쇠고기 수입 위생 조건 위헌확인 청구인 9만5988명의 두 배가 넘는 숫자로, 게임에 대한 대중의 관심이 얼마나 큰지 보여줍니다.
게임은 대중문화의 한 축으로 성장해왔지만, 현행법은 여전히 게임을 대중문화가 아닌 '계도의 대상'으로 보고 있습니다.
게임산업진흥에 관한 법률 제32조 제2항 제3호는 "범죄·폭력·음란 등을 지나치게 묘사하여 범죄심리 또는 모방심리를 부추기는 등 사회질서를 문란하게 할 우려가 있는 게임"의 제작 또는 반입을 금지합니다.
이를 위반하면 2년 이하 징역이나 2000만원 이하의 벌금에 처하는데요. 애매한 조항이 심의위원의 자의적 해석에 힘을 실어 게임 유통을 부당하게 막는다는 불만이 이번 헌법소원으로 폭발한 겁니다.
한국게임이용자협회장인 이철우 변호사가 지난달 21일 경실련에서 <뉴스토마토>와 인터뷰하고 있다. (사진=이범종 기자)
"헌재도 게임 '문화예술'로 볼지 궁금"
이 소송의 대리인 이철우 변호사(한국게임이용자협회장)는 "지난해 문화예술진흥법 개정으로 게임도 법률상 문화예술 범주로 포섭됐다"면서도 "(범죄 구성요건과 형벌이 명확해야 한다는) 명확성의 원칙에 대한 지적과 별개로, 한 명의 게이머로서 이번 헌법소원에서 '문화향유권', '문화예술 창작의 자유'에 관한 기본권 침해 주장도 펼친 후, 헌법과 기본권의 관점에서도 게임이 문화예술로 판단될 수 있는지 확인하고 싶다"고 사건 수임 배경을 말했습니다.
이 변호사는 지난달 14일 헌법재판소에 보충 이유서를 내고 적법 요건에 대한 주장을 더했습니다. 이 변호사는 "위헌 결정이 나오지 않더라도 충분히 의미가 있다고 보지만, 게임 검열 제도에 대한 헌법적 해명이 필요하다고 생각하기 때문에 본안 판단을 받는 게 일차 목표"라며 "대표 청구인 김성회씨(유튜브 'G식백과' 운영자)가 게임 개발 기획 이력이 있었던 점을 살려 게임 제작업자로 등록하는 등, 헌법소원 적법요건 중 기본권 침해의 직접성이나 자기관련성, 청구기간 관련 부분을 충족하는 차원"이라고 밝혔습니다.
현행법이 '대중이 게임할 권리'를 제약해온 근거는 게임이 상호작용 콘텐츠라는 점인데요. 이 근거가 부실하다는 점을 게임물관리위원회가 자인하는 장면이 올해 10월17일 국정감사 때 나왔습니다.
당시 서태건 게임물관리위원회 위원장은 '게임이 상호작용 콘텐츠여서 엄격한 잣대가 필요하다는 과학적 근거'에 대해 "그런 부분에 대한 과학적 연구는 좀 필요하다고 생각하고 있다"고 답했습니다.
'대중이 게임할 권리'는 헌법 11조가 규정한 평등권의 핵심 쟁점이기도 합니다. 해당 조항은 누구든지 문화 생활의 모든 영역에서 차별받지 않는다고 못박았습니다.
이 변호사는 "평등권은 '합리적인 이유 없는 차별'을 금지하고 있으며, 게이머들도 '영화, 드라마, 소설 등 분야와 달리 게임만 차별하지 말아달라. 동일한 잣대를 적용해달라'고 외치는 만큼, 상호작용 요소가 게임을 다른 매체와 차별할 합리적인 이유가 되는지가 중요하다"고 말했습니다.
또 "영화는 모두가 선망하는 배우들이 실감나게 연기하고, 미술이나 웹툰은 해당 장면을 향유자가 쉽게 저장해서 반복적으로 자극을 받을 수 있는 등 매체별 특성이 있기 때문에 상호작용 요소만으로 게임이 차등 취급 받아야 된다고 생각하지 않는다"고 부연했습니다.
이철우 변호사가 올해 2월 생일 잔치 때 게임 '우마무스메 프리티 더비' 캐릭터 '하루 우라라' 케이크를 받고 기뻐하고 있다. (사진=본인 제공)
"게임대상, 작품성 위주로 봐야"
이 변호사는 게임이 진정한 대중문화로 인정받기 위해서는 현행 '대한민국 게임대상'도 변해야 한다고 봅니다. 게임대상은 심사 과정의 공정성과 심사위원 전문성에 대한 논란이 일고 있는데요. 게임이용자협회는 지난달 20일 심사위원 명단과 약력, 심사평정표 등에 대한 정보공개를 청구했습니다.
이 변호사는 "게임이 문화예술이라면, 대통령상 시상 과정에서의 평가도 그에 걸맞는 수준이 돼야 한다"며 "문화예술로서의 가치를 평가하려면, 지금 기준과 같이 '매출액'이나, '이용자 수'가 아니라 '작품성'과 '완성도', '게임분야에 미치는 영향력' 등이 심사의 중요한 고려 요소가 돼야 한다는 점에서도, 국민 대다수가 즐기는 문화로서 여론이 충분히 반영되지 못하고 있다는 문제의식이 있다"고 말했습니다.
이어 "심사위원 분들이 게임을 얼마나 잘 아시는지(전문성), 심사대상에 해당하는 게임을 직접 충분히 플레이 하시는지가 궁금했다"며 "만약 그게 아니라 수십 분의 프레젠테이션이나 설명 자료만으로 수상작을 선정한다면, 그야말로 먹어보지 않고 평가하는 '흑백요리사'나 유튜브 요약본을 보고 주는 '영화상' 아니겠느냐"고 물었습니다.
이범종 기자 smile@etomato.com
이 기사는 뉴스토마토 보도준칙 및 윤리강령에 따라 김나볏 테크지식산업부장이 최종 확인·수정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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