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뉴스토마토 김미애기자] 부모 중 한 쪽이 상대방의 동의 없이 자녀를 데리고 외국으로 출국했을 경우 '국외이송약취죄'로 처벌할 수 없다는 대법원의 첫 판단이 나왔다.
최근 다문화가정이 늘면서 한국 남성과 결혼했다가 남편의 동의 없이 자녀와 외국으로 출국하는 외국인 여성의 사례가 적지 않은 가운데, 유사 사건에 큰 영향을 미칠 전망이다.
20일 대법원 전원합의체(주심 박보영 대법관)는 한국에서 남편 정모씨와 결혼해 거주하다 부부싸움 끝에 남편의 동의 없이 생후 13개월된 자녀를 데리고 베트남으로 출국한 혐의(국외이송약취) 등으로 기소된 베트남 여성 A씨에게 무죄를 선고한 원심을 확정했다.
사건의 쟁점은 어린 자녀를 공동으로 양육하는 부모 중 한 사람이 상대 부모와 협의하거나 법원의 결정을 거치치 않고 자녀를 외국으로 보낸 것을 국외이송약취죄로 처벌할 수 있는지 여부였다.
그동안 대법원은 "미성년자를 보호·감독하는 사람이더라도 상대방의 보호양육권을 침해하거나 자신의 보호양육권을 남용해 자녀의 이익을 침해할 땐, 미성년자약취죄의 주체가 될 수 있다"며 사안에 따라 부모도 자녀에 대한 약취죄로 처벌받을 수 있다는 입장이었다.
그런데 부모의 행위가 약취죄에 해당하기 위한 구체적 요건과 인정 범위의 명확한 판단 기준이 정립돼 있지 않아, 이에 대한 대법원의 판단이 사회적 관심사로 제기돼 왔다.
이에 대해 이날 재판부는 "부모가 자녀와 함께 살다가 그 중 한 쪽이 폭행·협박 또는 불법적인 행위 없이 자녀를 다른 곳으로 데려가 보호·양육하는 것은, 보호·양육권 남용 등의 특별한 사정이 없는 한 약취죄로 처벌할 수 없다"며 형사처벌의 명확한 기준을 제시했다.
재판부는 다만 "상대방 부모가 혼자서 보호·양육하는 자녀를 폭행·협박하거나 불법적인 힘을 사용해 빼앗는 행위, 자녀를 데려갈 때 자녀에 대한 보호·양육과는 관계없이 오히려 보호·양육권을 남용하는 행위 등은 원칙적으로 약취죄에 해당한다"는 점을 분명히 했다.
이인복 대법관 등은 "민사적 절차를 거치지 않았다고 해서 약취죄의 성립 범위를 확대하는 것은 약취죄의 입법 취지에 맞지 않고, 국제결혼·다문화가정의 현실적 문제점은 별도의 입법적·행정적 조치를 통해 해결하는 것이 바람직하다"는 보충 의견을 냈다.
반면 신영철·김용덕 등 다섯명의 대법관은 "공동으로 보호·양육하던 유아를 상대방의 동의나 가정법원의 결정이 없는 상태에서 국외로 데리고 가는 것은 ‘사실상의 힘’을 사용해 유아를 자신의 지배하에 옮긴 것이므로 '약취'에 해당한다"는 반대 의견을 밝혔다.
이어 "공동친권자 중 일방이 정당한 절차를 따르지 않은 채 다른 공동친권자의 동의 없이, 자녀를 데리고 종전의 거주지가 아닌 국외로 나간 행위는, 자녀의 생활관계 또는 보호관계에 중대한 변화를 가져오는 것"이라며 " 적절한 제재를 가해 함부로 주관적·개인적인 판단에 의해 자녀의 복리를 해칠 수 있는 행동을 하지 못하도록 해야 한다"고 말했다.
대법원 관계자는 "이번 전원합의체 판결은 부모의 행위가 어떠한 경우에 자녀에 대한 약취죄로 처벌되는지 그 요건과 범위를 명확히 선언해 중요한 의미가 있다"고 말했다.
앞서 A씨는 베트남에서 한국으로 시집온 뒤 남편의 동의 없이 생후 13개월이 된 자녀를 데리고 모국으로 돌아가 아이를 친정에 맡긴 혐의로 기소됐다. 1·2심은 "당시 정황, 자녀 나이 등을 고려할 때 A씨가 자녀의 이익을 침해했다고 볼 수 없다"며 무죄를 선고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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