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뉴스토마토 이보라기자] "창조경제니, 손톱 밑 가시니 하는데 말 갖고 장난치는 것으로밖에 안 여겨집니다."
"일감을 받고 싶어도 일할 사람이 없어서 더 받지 못하고 있어요."
"두 발로 서 있을 공간이 없어 한 발로 서 있습니다. 저희도 두 발로 서고 싶죠."
"불공정관행 없앤다고들 하는데 현장 한 번 와 보라고 하세요. 정부의 말보다 대기업의 압박이 더 서슬 퍼렇습니다."
도무지 끝이 없다. 중소 제조업 현장에는 신음과 자조섞인 한탄, 그러면서도 실낱같은 희망을 잡으려는 몸부림이 어지럽게 널려 있다. 대통령이 직접 나서 중기 대통령을 표방했지만 여전히 현실은 아수라도(阿修羅道)다. 99.9%의 눈물이 그곳에 있다.
정부는 중소기업을 창조경제의 주역으로 내세우고 창업과 벤처 활성화를 통해 일자리를 창출하겠다고 선언했다. 중소기업의 발전을 가로막는 손톱 밑 가시도 뽑겠다고 주창했다. 상생과 동반성장이 지난 대선에 이어 여전히 시대적 과제로 자리하면서 정부도 마냥 손을 놓은 수만은 없었다.
정부는 이른바 ICT로 불리는 첨단기술 산업에 눈을 돌렸다. 국가적 차원에서 미래 성장동력에 정책과 자금을 집중하는 것은 어쩌면 당연해 보인다. 다만 이 과정에서 정작 사람이 몰려 있고, 산업의 근간이 되는 중소 제조영역은 철저히 소외됐다. 천덕꾸러기가 된 것도 모자라 이제는 나 몰라라 방치하는 찬밥신세로까지 전락했다.
중소 제조업은 우리나라 전체 사업체 중 99.4%, 전체 종사자의 76.7%를 차지하고 있는 국가경제의 대들보다. 그러나 사정은 예나 지금이나 매한가지. 정권이 바뀔 때마다 다들 "중소기업을 살리겠다" 외쳤으나 실효성 있는 정책은 단 하나도 없었다. 특히 보수정권의 경우 그 정도가 심했다.
지난 정부 이명박 대통령은 녹색성장을 국가경제정책 기조로 삼고 중소기업 활성화를 공언했다. 실제는 '재벌 프렌들리'였다. 임기 내내 대기업의 등살에 납품단가가 후려쳐졌다. 도산에 이르면서도 힘 없는 중소기업은 말 한마디 제대로 꺼내지 못했다. 녹색성장을 따라 했던 태양광 등 신재생에너지 기업들은 하나같이 무너져 내렸다.
19대 총선과 18대 대선을 전후해 경제민주화 광풍이 불었다. 정치권은 바짝 긴장했다. 보수와 진보, 가릴 것 없이 재벌개혁을, 동반성장을, 중소기업 지원을 약속했다. 자연스레 박근혜 정부도 여론의 눈치를 살폈다. 그렇게 해서 '중기 대통령', '창조경제', '손톱 밑 가시'가 나왔다. 여론의 힘이었다.
그럼에도 비참한 실상은 어느 것 하나 개선되질 못했다. 소위 빽 있고, 목소리 커야 그제야 마지못해 약간의 지원이라도 더해졌다. 묵묵히 장갑에 기름때 묻히는 다수의 현장은 여전히 생존의 기로에 놓여 있다. 정부 눈치에 너도나도 창조경제를 외쳐대지만 개념조차 모호하다. 공부하라는 건지, 돕겠다는 건지 갈피를 잡을 수 없다.
현장을 외면하고 대통령 입만을 바라보기에 어쩌면 당연한 결과일지 모른다. 현장에서 만난 대부분의 중소기업 관계자들은 또 다시 MB 정책의 재연이 될까 두렵다는 표정이다. "구호만 있지, 정책은 없다"는 말이 그들로부터 자연스레 흘러나왔다. 더 이상 정부를 믿고, 바라봐서는 안 된다는 불신도 강하게 배여 있었다.
갑을로 대변되는 대기업과의 불공정 관행은 여전하고, 혜택을 받는 중소기업은 손가락으로 꼽을 정도다. 원청으로부터 1, 2, 3, 4차까지 이어지는 먹이사슬에서 자생력 있게 서기란 불가능에 가까울 정도다. 모집광고를 숱하게 내봐야 찾아오는 젊은 인력 하나 없다. 자금사정은 월급을 걱정할 정도로 꼬였다. 해외로 눈을 돌리라고 하는데 여력은 없다. 이게 현장이었다.
24일 중소기업중앙회에서 열린 '제조업의 재발견' 세미나에 참석한 한 중소기업 대표가 한마디 말을 남기고 쓸쓸히 돌아섰다.
"우리 중소기업들. 정부에서, 대기업에서 많이 도와준다고 하는데 도움되는게 없어요. 언제나 그랬듯이 똑같은 이야기의 반복입니다. 어려운 말로 이론적인 정책만 내놓지 말고 실제 우리 중소기업이 무엇을 원하는지, 그것만이라도 알아주길 바랄 뿐입니다."
'돈'이 몰리는 곳에 정책의 초점을 둘 게 아니라 '사람'이 있는 곳을 봐 달라는 절규. 현장과 따로 노는 정책은 '구호'만으로도 벅차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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