금감원, 황영기 회장 '직무정지' 중징계
제재심의위 "황 회장, 우리은행 손실에 책임 있다"
금융당국 중징계 결정 강행
황회장, 금융인생 최대위기..법정공방 가능성
2009-09-04 00:45:56 2009-09-04 08:17:29
[뉴스토마토 박성원기자] 우리은행의 파생상품 투자손실 책임을 추궁받고 있는 황영기 KB금융 회장에 대해 '직무정지 상당'의 징계가 잠정 결정됐다.
 
이번 결정은 금융기관의 투자손실을 놓고 감독당국이 최고경영자에게 책임을 묻는 첫번째 사례라는 점에서 파장이 만만치 않을 전망이다. 황 회장에 대한 징계여부는 다음주 열릴 금융위원회에서 최종 확정된다.
  
◇ 금감원, "황 회장 투자손실 책임져야"
  
금감원은 3일 열린 제재심의위원회에서 황 회장 등에 대한 징계안건을 논의한 끝에 기존 입장대로 '직무정지 상당'의 중징계를 사실상 결정했다.
  
금감원의 징계는 '해임권고', '직무정지', '문책경고', '주의적 경고' 등 4단계로 나뉜다. 이중 '해임권고'과 '직무정지'는 중징계에 해당한다.
 
'문책경고'와 '주의적 경고' 등 비교적 가벼운 징계가 내려졌을 경우엔 금융위를 거칠 필요 없이 제재심의위의 결정만으로 징계가 확정된다.
  
우리은행은 황 회장이 우리금융지주 회장 겸 우리은행장으로 재직할 당시 미국의 부채담보부증권(CDO)와 신용부도스와프(CDS)에 모두 15억8000만 달러를 투자했다. 그러나 금융위기 여파로 투자액의 90% 가량인 1조6200억원을 손실처리했다.
 
이를 두고 지난달 금감원은 당시 황 회장이 적절한 리스크 관리 없이 대규모 손실을 초래할 투자를 결정했다며 '직무정지 상당'의 징계방침을 통보한 바 있다.
 
◇ 징계 적절성 두고 논란..금감원 '정면돌파' 선택
  
금감원이 황 회장에 대해 징계를 내릴 조짐을 보이자 금융권에서는 논란이 빚어지기도 했다. 황 회장이 당시 조직의 '수장(首長)'으로서 도의적 책임을 져야한다는 주장과 감독을 소홀히 한 금감원이 문제가 불거지자 책임전가에 나섰다는 비판이 팽팽이 맞서왔다.
 
일단 금감원의 이번 결정은 황 회장에 대한 징계방침을 두고 논란이 커지는 상황에서 결국 '정면돌파'를 선택했다는 의미로 풀이된다. 
 
파생상품 투자손실을 놓고 최고경영자를 사후에 징계하는 것이 적절치 못한 데다 감독당국이 책임을 방기했다는 비판이 있었지만 모든 논란을 일축하고 책임을 묻겠다는 의지를 확인한 것이다.
 
실제로 김종창 금융감독원장은 지난달 26일 "황 회장에 대한 징계사유가 있다"며 자신감을 내비치기도 했다. 이틀 뒤 진동수 금융위원장은 "황 회장 징계는 적법한 절차에 따라 이뤄지고 있다"며 "금감원의 검사를 존중해야 한다"고 강조했다.
 
금융당국 수장들이 이같은 발언이 잇따르자 황 회장에 대한 중징계는 점차 기정사실로 받아들여졌고 예상대로 '직무정지 상당'의 징계가 결정됐다.
 
물론 제재심의위의 결정만으로 황 회장에 대한 징계가 확정되는 것은 아니다. 금융위가 제재심의위의 결정을 번복할 경우 징계수위가 낮아지거나 징계가 취소될 수도 있다.
 
하지만 '한지붕 두가족'인 금융위와 금감원의 관계를 감안할 때 제재심의위의 결정이 뒤집힐 가능성은 낮아보인다. 그간 두 기관이 이번 사건에 대해 보인 일관적인 입장을 되짚어볼 때 서로 다른 목소리를 낼 가능성은 거의 없다는 것이다.
  
그동안 금융위와 금감원이 가끔씩 업무범위와 권한을 놓고 은근히 '기싸움'을 벌였다는 것은 공공연한 사실이다. 하지만 이번만큼은 '두가족'이 아닌, '한지붕'에 방점이 찍혀있다는 분석이 힘을 얻고 있다.
 
◇ 황 회장 어떻게 될까
 
금융위가 제재심의위의 결정을 최종확정한다 할지라도 당장 황 회장의 거취에 별다른 문제는 생기지 않는다. 이번에 징계가 잠정 결정된 현직 우리은행 인사는 이종휘 행장이다.
 
그러나 금감원은 이 행장에 대해선 '주의적 경고'를 결정했다. 사실상 구두경고 수준에 불과한 경징계다.
 
황 회장은 이미 지난 2007년 3월 우리은행을 떠났다. 결국 그가 오는 2011년 9월까지 KB금융 회장직을 맡는 데는 지장이 없다.
 
하지만 그가 KB금융 회장직을 다시 역임할 수 있을지는 미지수다. 직무정지 징계를 받은 인물은 4년간 금융기관 임원으로 선출될 자격을 박탈당하기 때문이다.
 
그러나 이같은 실질적인 징계 못지 않게 그간 승승장구했던 황 회장이 입을 '상징적인 타격'도 크다는 게 금융권의 분석이다.
 
금융계의 대표적인 'MB맨'으로 불리는 황 회장은 삼성증권 사장을 역임했고 지난 2007년 대선 당시 이명박 캠프에서 활동했다. 현 정부가 출범한 뒤에는 KB금융 회장 자리에 오르며 명실상부한 금융권 최대 '거물'로 떠올랐다.
 
금융권 관계자는 "책임 여부와 사실관계를 두고 논란이 끊이지 않겠지만, 징계권한을 가진 금융당국이 내린 결정이기 때문에 일단 받아들일 수밖에 없다"며 "황 회장 개인에 대한 시장의 신뢰에 문제가 생길 수 있고, 현재 몸담고 있는 KB금융 역시 일정 부분 이미지 손상이 불가피할 것"이라고 말했다.
 
◇ 감독당국 vs. 황회장..법정공방 벌어질까
 
만약 금융위가 제재심의위의 결정을 최종 확정하고, 황 회장에 여기에 반발한다면 법정공방이 벌어질 가능성도 있다. 그러나 KB금융이 황 회장의 대리인을 자처하며 전면에 나서기는 어려울 것으로 보인다.
 
황 회장측은 지난달 24일 금감원에 징계통보 방침에 대한 소명자료를 제출했다.
 
그는 이 자료에서 CDO와 CDS 투자를 직접 지시한 사실이 없고, 재임기간에는 파생상품 투자에 따른 손실을 입지 않았다고 반박했다. 또 은행의 건전성을 훼손한 사실도 없다고 주장한 것으로 알려졌다.
 
특히 '천재지변'에 가까운 금융위기에 따라 파생상품 손실이 발생한 만큼 이를 개인의 책임으로 돌리는 것은 부당하다는 입장을 거듭 강조해왔다. 전 세계 금융시장을 공황에 빠뜨린 '불가항력'을 간과해서는 안 된다는 것이다.
 
하지만 논란이 된 파생상품 투자 문제는 KB금융과 아무런 상관이 없다. 단지 문제가 불거진 현 시점에 황 회장이 KB금융 회장직을 맡고 있을 뿐이다.
 
현재 황 회장의 법적 대리인은 법무법인 세종이 맡고 있다. 대형로펌과 함께 금감원에 맞서고 있는 만큼, 감독당국의 눈치를 봐야하는 금융기관을 내세울 만한 상황은 아니라는 게 금융권 안팎의 지적이다.
 
시중은행 관계자는 "당사자들은 부인하겠지만 금융기관은 감독당국의 눈치를 볼 수밖에 없다"며 "이같은 점을 잘 알고 있는 황 회장이 굳이 현재 몸담고 있는 조직에 부담을 주는 방법을 선택하지는 않을 것"이라고 내다봤다.
 
뉴스토마토 박성원 기자 want@etomato.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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