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뉴스토마토 황세준 기자] 지난 1996년 GM이 전기차 'EV1'을 선보이면서 전기차 시대의 개막을 알렸다. EV1의 출시는 내연기관차 독주 시대의 끝을 알리는 하나의 '사건'이었다. EV1은 비록 2년 만에 단종됐지만 업계에 몰고온 영향이 적지 않았다. 글로벌 자동차 메이커들이 친환경차 대량생산에 관심을 갖기 시작했다. 1997년 토요타 '프리우스', 2008년 테슬라 '로드스터'가 출시됐다. 2012년 닛산 '리프'와 GM '볼트'(VOLT), 테슬라 '모델S'가 나오면서 글로벌 자동차업계에 전기차 개발 경쟁이 본격화됐다.
전기차는 내연기관차보다 먼저 개발됐지만 오랜 기간 빛을 보지 못했다. 137년 전인 1881년 프랑스 파리에서 열린 국제전기박람회를 통해 3륜 전기차가 대중에게 공개됐다. 1884년에는 영국인 발명가 토마스 파커가 공식적으로 세계 최초라 불리는 전기차를 개발하고 1886년부터 판매했다. 같은 해 칼 벤츠가 가솔린엔진 자동차를 세계 최초로 개발한 것에 비춰보면 전기차가 내연기관차보다 5년 이상 더 빠르게 소개된 셈이다. 1897년엔 미국이 전기차를 뉴욕 택시로 채택했다. 그러나 1919년 포드가 컨베이어 방식으로 가솔린엔진 자동차를 대량생산, 판매하면서 전기차는 암흑기를 겪었다.
2012년 등장한 전기차들도 대중화에는 많은 문제점을 안고 있었다. 장시간 충전이 필요했고, 주행거리도 내연기관차에 비해 짧았다. 테슬라 '모델S'의 경우 426㎞의 주행거리를 구현했지만, 한화로 약 1억원에 달하는 높은 가격이 걸림돌이었다. 3년 뒤인 2015년 디트로이트모터쇼에서 GM이 공개한 콘셉트카 '볼트'(Bolt)는 대중화를 추구했다. 3000만원대로 확 낮아진 가격에 320㎞ 이상의 주행거리를 목표로 개발 중이라는 소식이 전해졌다. 2016년 CES에서 '볼트EV'로 정식 공개된 이 차량은 주행거리 383㎞를 구현했다. 성능도 최대출력 204마력, 36.7㎏·m로 스포츠형 내연기관차에 맞먹는 수준이었다. 소비자들의 주문이 쇄도했고, '볼트EV'는 2017년 1월 '북미지역 올해의 차'에 선정됐다.
볼트는 대중 전기차 시대를 열며 독주할 것처럼 보였다. 하지만 올해 3월 현대차가 1회 충전 주행거리 406㎞인 '코나EV'를 제네바모터쇼에서 공개하면서 전기차 시장의 새로운 강자로 떠올랐다. 현재 양산하는 대중적인 전기차 중 코나EV보다 주행거리가 긴 모델은 없다. 게다가 코나EV는 그간 전기차 트렌드였던 세단이나 소형 해치백이 아닌 SUV라는 점에서 차별성도 갖췄다. 소비자들은 즉각 반응했다. 한국에서 예약판매를 시작한지 불과 21일 만에 1만8000대 주문이 쏟아졌다. 현대차가 올 한 해 공급하려던 물량(1만5000대)을 20%나 초과했다. 내연기관차 시장에서 후발주자였던 현대차는 코나EV를 통해 전기차 기술 리더로 올라섰다. 2016년 6월 주행거리 191㎞인 '아이오닉 일렉트릭'을 선보이며 전기차 시장에 출사표를 낸 지 2년 만의 성과였다.
자존심을 구긴 글로벌 완성차 제조사들은 부랴부랴 투자에 나섰다. 미국 포드는 2022년까지 내연기관차 개발비용을 5억달러 감축하고 50억달러를 전기차 개발에 투자키로 했다. 벤츠는 올해 9월 첫 전기차인 '더 뉴 EQC'를 선보였다. 출시 예상가격이 5000만원대로 코나EV보다 비싸지만 450㎞의 주행거리를 확보했다. 벤츠는 2022년까지 10종 이상의 전기차를 출시할 계획이다. 디터 제체 다임러AG 이사회 의장 겸 벤츠 승용부문 회장은 '더 뉴 EQC'를 공개하면서 "EQ 모델 포트폴리오 확장을 위해 100억유로 이상을 투자하고 있다”고 밝혔다. 아우디도 첫 전기차인 e-트론을 지난 8월 공개했다. 올해 말부터 유럽을 시작으로 글로벌 시장에서 판매에 돌입한다. SUV 모델로 400㎞ 이상의 주행거리를 갖췄으며, 가격은 1억원대다.
글로벌 시장조사업체인 SNE리서치는 배출가스 규제 강화와 맞물려 전 세계 전기차 판매량이 2020년 390만대, 2025년 1200만대로 급증할 것으로 전망했다. 블룸버그뉴에너지파이낸스(BNEF)는 전기차 판매량이 2040년 글로벌 신차 판매량의 54%, 전 세계 자동차의 33%를 전기차가 점유할 것으로 예측했다. 또 2030년 국가별 전기차 비중은 유럽 44%, 중국 41%, 미국 34%, 한국 28%를 차지할 것으로 내다봤다.
전기차 시장 확대의 열쇠는 배터리가 쥐고 있다. 전기차 주행거리가 늘어나는 동안 내연기관차도 연비 향상을 이뤘다. 최근 현대차가 출시한 '더 뉴 아반떼'의 경우 가솔린 모델임에도 17㎞/ℓ 이상의 연비를 달성했다. 기아차 '더 뉴 K5' 가솔린 모델의 경우 연료 탱크를 가득 채우면 약 800㎞를 주행할 수 있다. 국토가 넓은 미국이나 유럽에서는 1회 충전 주행거리 400㎞로는 장거리 운행에 성이 차질 않는다. 배터리 용량을 키우면 전기차의 주행거리도 증가하지만 차량 무게와 원가가 증가하는 문제점이 있다.
때문에 배터리업계는 동일한 용량으로 더 많은 에너지를 비축하는 기술 개발에 집중하고 있다. 삼성SDI의 경우 2025년까지 1회 충전 주행거리 500㎞ 이상으로 배터리 기술력을 끌어올릴 계획이다. 전문가들은 배터리 기술력을 갖고 있는 한국이 앞으로 전기차 시장을 주도할 가능성이 높다고 진단한다. GM 볼트EV의 경우에도 배터리를 비롯한 핵심 부품을 LG 계열사들이 납품했다. 이항구 산업연구원 선임연구위원은 "삼성과 현대차가 협업한다면 엄청난 시너지를 낼 수 있다"며 "정부 차원에서 같이 연구할 수 있는 장을 만들어 주는 게 필요하다"고 말했다.
황세준 기자 hsj1212@etomato.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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