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뉴스토마토 명정선기자] 무려 1000조원에 육박하는 가계부채가 한국경제를 위협하고 있다. 빚 부담으로 소비는 눌려있고 경제 둔화로 상환능력 마저 떨어지면서 가계부실 우려가 커지고 있다.
문제는 가계빚을 줄이기 위한 마땅한 대책이 없다는 점이다. 가계빚 조절을 위한 핵심 수단인 금리정책의 경우 인상, 인하 모두 상당한 부작용이 불가피해 보인다. 당국인 한국은행도 한 숨만 쉬고 있는 형편이다.
가계부채 증가는 부동산 경기 호조와 저금리 기조를 바탕으로 한 금융권의 대출 확대와 맞물려 있다. 대출확대로 시중에 불어난 유동성은 인플레이션과 자산버블을 초래하기 마련이다. 중앙은행의 금리 정책이 중요한 것도 이 때문이다.
일반적으로 부채 증가를 억제하기 위한 표준 대응책으로는 금리인상이 꼽히지만 현재로선 부작용만 초래할 것이란 우려가 크다.
경제 위기로 성장 경로가 불투명한 상황에서 인상카드를 꺼내면 '눈덩이' 이자에 짓눌린 가계가 대거 파산할 위험이 커지기 때문이다.
가계부채 증가를 주도한 주택담보대출 중 90%가 금리인상에 매우 취약한 변동금리형 대출이라는 점도 금리인상을 어렵게 하는 요인이다.
3일 한국은행에 따르면 지난해 3월 이미 국민 1인당 이자부담액은 월 48만원을 넘어섰다. 4인 가족을 기준으로는 한 가구에서 이자로 나가는 돈만 월 200만원에 육박한다.
이 상황에서 당장 기준 금리가 1%포인트 오르면 가계빚 1000조원에 대한 이자부담만 5조원이나 불어난다.
가계의 이자 부담이 커지고 재무 건전성이 악화되면 소비가 위축되면서 경기회복은 더욱 어려워 진다.
유병규 현대경제연구원 본부장은 “가계부채 조정을 위해 점진적 인상이 요구되지만 이미 시기를 놓친 상황에서 해외경제가 더 불안해진 때 금리 인상은 어렵다"고 말했다.
◇ 인플레보다 무서운 디플레.. 거품붕괴와 불황 '우려'
그렇다면 고금리 폭탄을 피하기 위해 디플레이션을 기대하는 편이 나을까. 디플레이션은 경기하강 국면에서 수요 감소로 물가수준이 낮아지는 것을 의미한다.
이때 중앙은행이 경기 부양을 위해 기준금리 인하 카드를 꺼낸다면 당장 가계의 이자부담은 줄어들 수 있지만 물가상승률을 뺀 실질금리가 마이너스여서 가계빚은 계속 늘어나는 악순환을 겪게 된다.
경기하강은 소득 감소와 일자리 상실, 채무상환 능력 악화로 이어질 수 있다는 점이 더 문제다.
디플레이션이 발생하면 소비자물가지수가 낮아져 음식과 부동산 등 대부분의 가격이 떨어져야 한다.
그러나 기업들은 매출액이 줄어 수익이 낮아지는 것을 극복하기 위해 저렴한 노동력이 있는 해외로 눈을 돌릴 수밖에 없다. 이는 곧 우리나라 국민의 실직으로 이어지는 셈이다.
외국계 증권사의 이코노미스트는 "일자리 상실은 살림살이가 쪼그라든다는 말이고 특히 빚을 많이 진 가정은 더 힘들어질 것"이라고 우려했다. 아울러 부동산 가격 하락은 부채상환 부담과 주택 처분, 가계부실화라는 최악의 악순환을 불러올 수 있다고 우려했다.
◇ 한은, 금리정책 딜레마 초래한 장본인
금리정책이 이 같은 딜레마에 놓인 것에 대해 전문가들은 한은이 적기에 선제적인 금리정책을 수행하지 못한 탓이 크다고 지적했다.
경제가 어려울때는 성장에 비중을 두는 게 맞지만 물가당국으로서 필요할 때는 확실히 통화긴축을 하면서 인플레이션을 잡았어야 했지만 이를 이행하지 않았다는 얘기다.
이명활 한국금융연구원 거시금융경제실장은 "금리정책에 있어 방향성 못지 않게 중요한 것은 타이밍"이라며 "선제적으로 올리지 못한 탓에 경기둔화시 한은이 내놓을 카드가 거의 없다"고 지적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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