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뉴스토마토 용윤신 기자] 성별, 혼인, 임신·출산 등을 이유로 모집·채용, 임금, 직업능력개발에 차별받는 ‘고용상 성차별’에 대한 인식이 낮은 것으로 나타났다. 특히 미국·영국 등 선진국과 달리 한국의 고용상 성차별 개선에 대한 시스템 부재와 개별적 신고에만 의존하는 만큼, 차별을 시정할 수 있는 제도 마련이 요구되고 있다. 고용상 성차별에 대한 문제를 풀기 위해서는 장애인차별금지법과 같은 ‘적극적 구제명령’이 필요하다는 주장이 나온다.
4일 고용노동부에 따르면 2020년 국가인권위원회에 접수된 고용영역에서의 성차별 진정은 86건으로 집계됐다. 이는 장애(1050건)나 사회적 신분(226건), 나이(84건)와 관련한 차별 진정 건수에 비해 적은 상황이다.
선진국 사례를 보면, 미국 연방 평등고용기회위원회(EEOC) 성차별 진정 건수는 연평균 2만1398건이다. 2020년 영국의 고용심판소에 접수된 성별 임금차별 진정은 1만1955건, 고용 성차별 진정은 5779건이다. 인구 및 경제규모의 차이를 고려하더라도 한국의 고용상 성차별 관련 신고나 소송 건수가 현저히 적다.
한국의 고용 성차별 시정제도가 오랫동안 작동하지 않았기 때문이라는 지적이 나온다.
4일 고용노동부에 따르면 2020년 국가인권위원회에 접수된 고용영역에서의 성차별 진정은 86건으로 집계됐다. 사진은 출근하는 직장인 모습. (사진=뉴시스)
한국여성정책연구원이 지난달 31일 공개한 '고용 성차별 시정제도 개선방안 연구'에 따르면 한국은 통계적 분석을 바탕으로 구조적, 집단적 차별을 사전에 탐지할 수 있는 차별시정 전문기구가 부재하다. 국가인권위의 직권조사 권한이 있지만 강제성이 없다.
피해자의 진정이 없어도 사업장의 고용 및 임금 격차 데이터를 검토해 차별적 관행이나 패턴이 나타나는지를 탐지하는 시스템을 갖춘 미국과 차이가 있다.
남녀고용평등법에 따른 적극적 고용개선조치(AA)제도가 시행돼 기업의 성별 고용 및 임금 현황 정보를 수집하고 있으나 이를 활용해 개별 기업의 성차별 가능성을 탐지하지는 못한다.
이에 따라 차별시정 전문기구가 집단적으로 나타나는 구조적 차별 양상을 탐지해 조사나 자체 진정을 개시할 수 있는 권한 부여의 필요성이 제기된다.
남녀고용평등법에 따르면 고용노동부 장관은 차별적 처우를 한 사업주에 대해 시정을 요구할 수 있다. 시정요구에 응하지 않을 경우 고용부 자관은 노동위원회에 통보해 심리하도록 하고 있다.
구미영 여성정책연구원 연구위원은 "노동위원회는 피해를 입은 개인의 신청에 기반해 작동하는 구제절차이기 때문에 다른 노동분쟁과 달리 성차별 사건에 대해서만 사전적인 탐지를 허용하는 것이 어려울 수 있다"며 "개정 남녀고용평등법에서 규정하는 시정통보 제도를 적극 활용할 수 있도록 제도적으로 지원해야 한다"고 설명했다.
사전적 탐지 기능을 실질적으로 운영하기 위해서는 "권위나 노동위원회가 구조적 성격의 차별을 탐지, 시정하는 것을 사업의 우선순위로 설정하고 이를 달성하기 위한 계획을 수립해 시행해야 한다"고 강조해
차별시정 전문기구가 AA 데이터를 활용할 수 있도록 국가인권위법이나 남녀고용평등법 등에 법적 근거를 마련할 필요도 있다.
신규채용 관련해서는 사용자의 정보작성과 보관 의무를 개선하는 것도 필요하다. 신규 채용에 지원한 지원자의 성별 현황 기록을 작성하고 채용 성차별 관련 조사가 진행될 경우 이를 제출할 의무를 부여하는 방식이다.
블라인드 채용을 준수하면서 응시자의 성별 현황을 집단적으로 파악하도록 하는 것이 가능하다. 공공기관의 채용 단계별 성별합격차 현황정보를 수집할 경우, 특정 기업의 면접단계에서의 성별 합격률에서 성차별 여부를 모니터링 할 수 있다.
이러한 변화를 위해서는 적극적 구제명령의 활성화도 수반돼야 한다.
현재 한국의 고용차별 관련 민사소송에서 법원이 적극적인 개선명령을 내릴 수 있는 것은 장애인차별금지법에 근거해서만 가능한 상황으로 성차별 소송 관련해서는 불가능하다.
개정 남녀고용평등법은 노동위원회의 성차별 시정명령 내용으로 △차별적 처우 등의 중지 △임금 등 근로조건의 개선(취업규칙, 단체협약 등의 제도개선 명령을 포함) △적절한 배상 등의 시정조치 등을 포함할 수 있다고 규정하고 있다.
구미영 연구위원은 "‘차별적 처우등의 중지, 임금 등 근로조건의 개선’이라는 거의 동일한 문언이 장애인차별금지법에서는 적극적 조치 명령의 근거로 해석되는 점, 고용 차별의 구조적인 성격을 고려할 때 구조 자체를 바꾸는 구제명령의 필요성이 크다는 점 등을 고려하면 노동위원회의 현행 해석론이 지나치게 소극적인 것으로 보인다"고 지적했다.
인권위의 시정권고와 관련해서는 "사업장의 구조나 제도 자체를 개선하도록 구체적인 목표나 일정을 부여하는 식의 권고는 드문 편"이라며 "한국 사업장에서의 구조적 고용 성차별의 실태를 고려해 민사소송 관련해 적극적인 구제명령을 내릴 수 있는 근거 조항을 마련하고 근거조항이 있는 인권위나 노동위의 경우 보다 적극적으로 구제명령을 하기위한 해석론을 정립할 필요가 있다"고 조언했다.
세종=용윤신 기자 yonyon@etomato.com
이 기사는 뉴스토마토 보도준칙 및 윤리강령에 따라 최신형 정치정책부장이 최종 확인·수정했습니다.
ⓒ 맛있는 뉴스토마토, 무단 전재 - 재배포 금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