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뉴스토마토 박주용·유지웅 기자] 한동훈 국민의힘 대표와 한덕수 국무총리가 8일 대국민 공동 담화를 통해 윤석열 대통령을 국정운영에서 배제하고, 조기 퇴진시키겠다고 약속했습니다. 비상계엄 사태 후 4일 만, 탄핵소추안이 폐기된 지 하루 만에 당정이 이와 같은 수습책을 내놓은 것인데요.
문제는 이 같은 해법이 '반헌법적'이라는 점입니다. 대통령의 직무정지는 오직 국회의 탄핵만으로 가능하고 이 경우 헌법과 법률에 따라 총리가 권한대행을 하는 것인데요. 대통령직을 그대로 유지한 채 그 권한을 총리와 여당 대표가 행사하는 것은 위헌이란 지적입니다. 이재명 민주당 대표는 이날 공동 담화에 대해 "또 다른 쿠데타"라고 했습니다. 윤 대통령이 친위 쿠데타로 내란을 도모한 상황에서 이번엔 당정이 대통령의 권한을 인위적으로 이양 받으면서 여권 전체가 '반헌법 세력'으로 내몰릴 위기에 처했습니다.
한동훈 국민의힘 대표와 한덕수 국무총리가 8일 서울 여의도 국민의힘 당사에서 대국민 공동 담화를 하고 있다. (사진=뉴시스)
"얼굴 바꾼 2차 내란"…직무정지는 오직 '탄핵' 뿐
한동훈 대표는 이날 오전 서울 여의도 중앙당사에서 진행한 한덕수 총리와의 대국민 공동 담화에서 "질서 있는 조기 퇴진 과정에서 혼란은 없을 것"이라며 "대통령의 퇴진 전까지 국무총리가 당과 긴밀히 협의해 민생과 국정 차질 없이 챙길 것"이라고 밝혔습니다. 한 대표는 또 한 총리와의 주 1회 이상의 회동 등을 약속했습니다. 한 대표가 마치 한 총리의 후견인으로서 수렴청정을 하겠다는 취지로 읽힙니다.
국민들이 아닌 국민의힘의 당원 투표로 뽑힌 여당 대표가 대통령을 직무에서 배제한 채 임의로 국가 권력을 행사하겠다고 일방적으로 발표한 것인데요. 헌법에도 없는 대통령 권한 이양으로, 위헌적이란 지적이 나옵니다.
대통령의 직무정지 규정은 헌법 제71조에 규정돼 있습니다. '대통령이 궐위되거나 사고로 인해 직무를 수행할 수 없을 때는 국무총리, 법률이 정한 국무위원의 순서로 그 권한을 대행'하도록 돼 있는데요. 여기에서 '사고'는 대통령이 탄핵소추 대상이 됐을 때, 또는 신체적·정신적 상태로 직무수행이 어려운 경우를 포함합니다. 한마디로 건강상의 문제가 아닌 이상 탄핵 이외의 방법으로 대통령의 직무를 정지할 수 없다는 것인데요. '법적 구속력이 없는 퇴진 로드맵'이란 의미입니다.
또 대통령을 직무에서 배제한다고 해도 그 권한을 한 정당의 당대표가 위임받거나 그렇게 해석될 만한 조항이 헌법에 단 한 줄도 없는데요. 특히 한 대표는 국민의힘의 당원투표로 뽑힌 비선출 권력입니다. 그럼에도 대통령 권한에 접근하려는 행보는, 민주주의의 기본 원칙을 흔드는 것이라는 비판이 이어집니다. 또 정부 기관이 아닌 정당 사무실에서 대통령 권한의 새로운 질서를 논의했다는 점도 정당이 정부보다 우위에 있다는 점을 부각하려는 의도로 보이는데요.
국민의힘 내부에선 대통령 직무 배제를 언급한 한 대표에 대한 비판의 목소리도 나옵니다. 여권의 차기 대선주자로 꼽히는 홍준표 대구시장은 페이스북에서 한 대표를 겨냥해 "어떻게 국민이 선출한 대통령을 직무 배제할 권한이 있느냐"며 "그건 탄핵 절차밖에 없다. 탄핵은 오락가락하면서 고작 8표를 미끼로 대통령을 협박하여 국정을 쥐겠다는 게 말이 되는 소리냐"고 비판했습니다.
여기에 내란 방조 공범이란 비판을 받는 한 총리도 국정운영의 명분이 없다는 지적이 나오는데요. 한 총리가 지난 3일 비상계엄 선포 안건을 심의했던 국무회의 참석자라는 이유 때문입니다. 야권에선 국무회의 심의 과정에서 위헌적 요소가 있을 경우에는 반대하거나 만류할 책임이 있다고 지적하며 한 총리도 내란의 공점이라고 비판하고 있는데요.
이런 상황에서 한 총리는 이날 오후에 당초 개최하려던 임시 국무회의를 비공개 국무위원 간담회로 대체해 진행했습니다. 한 총리는 매주 월요일에 개최되는 윤 대통령과의 주례회동은 취소했는데요. 윤 대통령은 배제하면서 정부는 그대로 운영하겠다는 의도로 해석됩니다.
이와 관련해 우원식 국회의장은 긴급 기자회견을 열고 한 대표와 한 총리를 향해 "그 누구도 부여한 바 없는 대통령의 권한을 총리와 여당이 공동행사 하겠다고 하는 것은 명백한 위헌"이라고 지적했습니다. 이재명 민주당 대표도 이날 '한동훈·한덕수'를 겨냥, "얼굴을 바꾼 2차 내란행위"라고 했습니다.
(그래픽=뉴스토마토)
퇴진 시기 '불분명'…'직무배제'라더니 '권한 행사'
윤 대통령의 퇴진 시기도 문제입니다. 한 대표가 대통령의 조기 퇴진을 확신에 찬 듯 말하고 있지만 언제까지 퇴진할 것인지 불투명한데요. 윤 대통령이 자신의 임기 문제를 포함해 정국 안정 방안을 '우리 당'에 일임하겠다고 했지만, 국민의힘 내부가 친한(친한동훈)계와 친윤(친윤석열)계로 나뉘어 있어서 합의된 내용이 도출될지 불투명하고, 윤 대통령이 당의 뜻을 그대로 따를 것인지도 확신할 수 없습니다.
특히 윤 대통령의 2선 후퇴가 무엇을 의미하는지 애매모호한데요. 한 대표가 "대통령은 외교를 포함한 국정에 관여하지 않을 것"이라고 말했지만, 윤 대통령은 이날 이상민 행정안전부 장관의 사의를 즉각 수용했고, 여기에 홍장원 전 국정원 1차장의 후임으로 오호룡 국정원장 특별보좌관을 임명한 것으로 알려졌습니다. 여전히 대통령의 인사권을 행사하며 국정에 관여하고 있는 겁니다.
때문에 윤 대통령의 직무를 배제하고, 국정운영의 권한을 인위적으로 나눈 한 대표와 한 총리에 대해 '내란의 공범 내지 방조범'이란 지적이 나오는데요. 이를 두고 이재명 민주당 대표는 "윤석열은 배후 조종으로 숨어 있으면서 내란공모 세력을 내세워 내란상태를 유지하겠다는 것으로, 얼굴을 바꾼 '2차 내란 행위'"라고 비판했습니다.
박주용·유지웅 기자 rukaoa@etomato.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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