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뉴스토마토 박진아 기자] '윤석열 탄핵소추안' 가결로 한국 경제의 단기 불확실성은 걷혔지만, 경기 부진의 그림자가 짙어지고 있습니다. 내수 부진 장기화 속, '트럼프 리스크'에 수출 둔화 경고음까지 나오며 나라 안팎의 위기론이 커지고 있는데요. 가뜩이나 내후년까지 '1%대' 저성장 터널에 갇히면서 경기 회복을 위한 추가경정예산(추경) 편성 등 대응책을 마련해야 한다는 지적이 나옵니다. 특히 정치권에 이어 통화당국인 한국은행마저 이례적으로 추경 편성을 제안하면서 추경 검토 요구 목소리가 커지고 있습니다.
내수 침체에 수출 둔화…경기 하방 위험 '수두룩'
16일 정부와 정치권 등에 따르면 '윤석열 탄핵소추안'이 국회를 통과하면서 한국 경제를 짓누르던 정치 불확실성은 일부분 걷혔지만, 대내외 불확실성이 여전하면서 경기 하강 압박이 지속되고 있다는 평가가 나옵니다. 기획재정부가 지난 13일 내놓은 '최근 경제동향(그린북) 12월호'만 보더라도 정부의 경기 진단이 비관적으로 돌아섰음을 고스란히 알 수 있습니다.
기재부는 그린북을 통해 "최근 우리 경제는 물가 안정세가 이어지고 있으나 대내외 불확실성 확대로 가계·기업 경제심리 위축 등 하방 위험 증가가 우려된다"고 진단했는데요. 지난 10월까지는 '경기 회복 흐름', 지난달부터는 '완만한 경기 회복세'라는 표현을 써왔지만, 이달 그린북에서는 '경기 회복'이라는 표현이 사라졌습니다. 대신 '하방 위험 증가 우려'라는 표현을 새롭게 넣었습니다. 최근 일련의 정치적 사태를 직접적으로 언급하진 않았지만, 그만큼 정치 불확실성이 커지면서 경기를 바라보는 시각이 비관적으로 돌아섰음을 알 수 있는 대목입니다.
실제 국내 경제 상황은 녹록치 않습니다. 실물경제 지표만 보더라도 악화 흐름이 고스란히 나타납니다. 산업활동동향을 보면, 지난 10월 기준 산업생산과 소비·투자 지표는 5개월 만에 동반 감소했습니다. 특히 내수 관련 지표가 개선되지 못하면서 현재 경기 상황을 보여주는 지표도 8개월째 반등하지 못했습니다. 지난달 소비자심리지수, 기업심리지수도 모두 하락하면서 소비자·기업 심리도 얼어붙었습니다. 소상공인연합회가 지난 10일부터 사흘간 음식점·숙박업, 도소매업 등 전국 소상공인 1630명을 설문한 결과를 보면, 응답자의 88.4%가 비상계엄 선포 뒤 매출이 줄었다고 응답해 내란 사태 이후 소비는 급격히 위축되는 모습도 보였습니다.
한국 경제의 최대 위협은 또 있습니다. 내달 1월20일 트럼프 2기 행정부가 출범하는 가운데, 출범 이후 한국을 향한 통상 압박은 본격적으로 몰아칠 것으로 보입니다. 관세율 인상, 한미 자유무역협정(FTA) 재협상, 방위비 분담금 인상을 요구하고 나설 가능성이 큰 데, 문제는 트럼프를 상대할 대통령이 부재중이어서 한 치 앞을 내다볼 수가 없다는 점입니다. 한국 경제를 지탱해온 수출 역시 상승폭이 줄어들면서 내년 경제성장률 전망치마저 떨어뜨리고 있습니다. 11월 수출은 전년 동기 대비 1.4% 증가하며 14개월 연속 플러스를 기록했지만, 증가율은 8월 이후 4개월 연속 둔화하면서 우려가 커지고 있는 실정입니다.
내수 침체 속에 비상계엄 사태가 터지면서 연말을 앞두고 소비심리가 위축된 16일 서울 명동거리의 모습. (사진=연합뉴스)
추경 검토 목소리 급물살…정부·여당 '선 긋기'
이 같은 이유로 정치권을 비롯해 정부 안팎에서는 경기 회복을 위한 적극적인 대응책이 필요하다는 목소리가 커지고 있습니다. 특히 내수 진작을 위한 수단으로 추경 편성 검토 요구가 봇물을 이루고 있는데요. 이재명 민주당 대표는 전날 국회에서 열린 기자회견에서 "연말 특수는 사라졌고 국민의 일상은 멈췄다. 불확실성 때문에 증폭된 금융시장의 위험은 현재 진행형"이라며 "지금 당장 해야 할 일은 내수 부족, 정부 재정 역할 축소에 따른 소비 침체를 해결하는 것"이라고 했습니다. 그러면서 "추경을 신속하게 논의할 필요가 있다"고 말했습니다.
한은도 '비상계엄 사태 이후 금융·경제 영향 평가'라는 보고서를 통해 이례적으로 추경 필요성을 언급했습니다. 한은은 "과거 두 차례 탄핵 국면에선 경제정책이 정치와 분리돼 정상적으로 추진돼 경제에 미친 영향은 제한적이었다"면서도 "이번에는 과거와 달리 통상 환경의 불확실성 증대·글로벌 경쟁 심화 등 대외여건의 어려움이 커진 상황"이라고 진단했습니다. 그러면서 "추경 등 주요 경제정책을 조속히 여야가 합의해 추진함으로써 대외에 우리 경제시스템이 정상적으로 작동한다는 모습을 가급적 빨리 보여줄 필요가 있다"고 강조했습니다.
다만 정부·여당은 추경 편성에 신중한 입장입니다. 기재부는 내년도 예산배정계획을 세우고 있고, 현 단계에서는 추경을 검토한 상황이 아니라는 입장입니다. 최상목 경제부총리 겸 기획재정부 장관은 전날 열린 경제관계장관회의에서 "가용 재원을 총동원한 내년도 상반기 신속 집행 계획을 곧 발표하겠다. 취약계층을 위한 추가 지원 방안도 과감하게 강구할 예정"이라고만 밝히며 야당의 추경 편성 제안과 관련해선 일절 언급하지 않았습니다.
권성동 국민의힘 원내대표는 이날 국회에서 최 부총리를 접견한 자리에서 "어제 이재명 대표가 추경 논의를 제안했는데 대단히 무책임한 행태다. 병 주고 약 주는 격 아닌가 생각한다"며 "3월이든, 6월이든 예산 조정 필요성 있을 때 그때 가서 추경을 논의해도 늦지 않다고 생각하고 있다"고 말했습니다. 그러면서 "정부 예산안은 이 대표의 '주머니 속 공깃돌' 아니다"며 "정부는 야당의 무책임한 책임 선동 휘둘리지 않고 내년도 예산안 집행에 만전을 기해주고 집행해 달라"고 당부했습니다.
권성동 국민의힘 원내대표(왼쪽)가 16일 오후 국회에서 최상목 경제부총리 겸 기획재정부 장관과 만나 발언하고 있다. (사진=연합뉴스)
박진아 기자 toyouja@etomato.com
이 기사는 뉴스토마토 보도준칙 및 윤리강령에 따라 최신형 정치정책부장이 최종 확인·수정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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