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월21일은 프랑스의 왕 루이 16세가 사망한 날입니다. 정확히는 처형된 날입니다. 부르봉 왕조의 마지막 왕이었던 루이 16세는 1789년 프랑스 혁명으로 왕위에서 퇴출된 뒤 1793년 1월21일 단두대에서 목이 잘렸습니다. 232년 전입니다.
루이 16세가 비극적 죽음을 맞은 건 혁명을 일으킨 민심을 제대로 살피지 못했기 때문입니다. 야사에 따르면, 루이 16세는 1789년 파리 시민들이 바스티유 감옥을 습격했다는 소식을 듣자 신하들에게 이렇게 물었다고 합니다.
"폭동이냐?"
그러자 옆에 있던 한 신하가 대답했습니다.
"폐하, 이건 폭동이 아닙니다. 혁명입니다."
만약 루이 16세가 혁명의 전조를 제대로 파악하고 대처했다면 어떻게 됐을까요. 필경 프랑스의 역사도, 그 자신의 운명도 다르게 흘렀을 겁니다.
루이 16세의 말로를 느닷없이 꺼내는 건 프랑스 혁명 당시와 지금 대한민국 상황이 묘하게 맞아떨어지기 때문입니다. 루이 16세는 절대왕정에서 사치와 향락만 즐겼습니다. 반면 시민들은 과중한 세금과 귀족들의 수탈에 시달렸습니다. 가뭄·흉년도 겪었습니다. 경제적 궁핍에 빠진, 성난 시민들은 결국 혁명을 일으켰습니다.
우리나라 역시 마찬가지입니다. 물가는 천정부지로 치솟고 이자 갚기에도 벅찬 가계부채의 연속입니다. 자영업자들은 내수 침체의 장기화에 눈물의 폐업에 이르렀습니다. 청년실업과 빈부격차 등 고질병도 제자리입니다. 오죽했으면 지난해엔 <자살하는 대한민국>이라는 책까지 나왔습니다. 반면 윤석열씨는 보수 언론과 극우 유튜브에 둘러싸여 민심을 자기 입맛에 맞게 호도했습니다. 그뿐인가요. 정책에선 극우 기조를 강화하는 데 전념했고, 배우자 김건희씨 수사를 무마하는 데만 매달렸습니다.
윤씨는 자신에 대한 국민적 성토를 '북한 공산세력', '종북 반국가 세력'으로 규정한 뒤 12·3 비상계엄 사태를 일으켰습니다. 친위 쿠데타였습니다. 무장한 계엄군과 경찰을 동원해 국회와 언론을 장악하려 했습니다. '부정선거'라는 극우 유튜버들의 망상에 일국의 대통령이 사로잡혔습니다. 비상계엄 내란은 윤씨를 몰락에 접어들게 했습니다. 헌정 사상 처음으로 '현직 대통령 체포·구속'이라는 불명예를 썼습니다. 윤씨는 지금 서울구치소 내 3평짜리 독실에 수감된 상태로, 헌법재판소의 탄핵 심판을 기다리고 있습니다.
상황이 이런 지경에 이르렀음에도, 윤씨는 여전히 정신을 못 차리고 있는 듯합니다. 탄핵 이후인 새해 1일엔 한남동 대통령 관저 앞에 모인 아스팔트 보수를 향해 "주권침탈세력과 반국가세력의 준동으로 대한민국이 위험하다"면서 "애국시민 여러분과 함께 이 나라를 지킬 것"이라고 선동습니다. 고위공직자범죄수사처에 체포된 17일에도 "뜨거운 애국심에 감사하다"라고 했습니다. 자신을 지지하는 아스팔트 보수는 '애국'으로 치켜세웠지만, 탄핵·체포에 찬성하는 시민들은 '주권침탈세력과 반국가세력'으로 몬 것입니다.
급기야 지난 19일 새벽엔 서울서부지법이 아스팔트 보수의 습격을 받았습니다. 법원 유리창과 외벽이 부서지고 기물이 훼손됐습니다. 경찰까지 폭행을 당했습니다. 윤씨는 검찰총장 출신입니다. 자신의 선동으로 법치주의가 무너진 걸 보고 무슨 생각을 했을까요. 아직도 아스팔트 보수는 애국이고, 시민들은 반국가세력이라고 생각하는 걸까요. 루이 16세는 혁명을 폭동으로 생각하고 있다가 목이 잘렸습니다.
윤씨 법률대리인단은 지금이라도 윤씨에게 말해야 합니다.
"애국이 아니라 폭동이다. 반국가세력의 준동이 아니라 혁명이다"라고요.
최병호 공동체부장
이 기사는 뉴스토마토 보도준칙 및 윤리강령에 따라 최병호 공동체부장이 최종 확인·수정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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