전세는 한국의 독특한 주택임대차 제도로, 다른 나라에서는 찾아보기 어렵다. 전세의 영어 표현도 한국어 발음을 그대로 사용한 ‘jeonse’이다. 전세 제도는 임차인이 목돈을 전세금(전세보증금)으로 임대인에게 맡기고 일정 기간 동안 주택의 사용권을 얻는 방식이다. 계약기간이 끝나면 전세금과 주택 사용권이 다시 교환된다.
임차인의 입장에서는 전세금을 돌려받지 못하면 큰 문제가 발생할 수 있다. 만일 미리 전세금 반환보증에 가입된 경우에는 임대인이 전세금을 반환하지 않더라도 보증회사가 손실을 보상해 주기 때문에 안심할 수 있다. 한편 임대인이 끝까지 전세금을 반환하지 않으면 보증회사는 해당 주택을 넘겨받지만, 결국 손실을 보는 경우가 많다. 주택도시보증공사(HUG)에 따르면, 2024년 중 전세금 반환보증 사고액은 4조 4,896억 원, 사고 건수는 2만 941건에 달한다. 이는 2021년 5,790억 원, 2022년 1조 1,726억 원에서 급격히 증가한 수치로, 2023년부터는 4조 원대를 기록하고 있다.
전세는 단순히 주택 사용권에 대한 계약일 뿐만 아니라, 임대인이 주택을 담보로 돈(전세금)을 무이자로 빌리는 금융 계약으로도 해석할 수 있다. 이를 잘 보여주는 사례가 바로 갭투자이다. 갭투자는 적은 자본으로 전세를 끼고 주택을 매입한 뒤, 주택가격이 오르면 높은 수익을 얻는 방식이다. 그러나 주택가격이 하락해 전세금에 미치지 못하는 경우, 이른바 ‘깡통전세’가 발생한다.
만약 주택가격이 하락하여 전세금을 회수하지 못할 가능성이 높다면, 임차인은 전세계약을 맺지 않거나 전세금을 낮추려 할 것이다. 임대인의 신용이 좋지 않은 것도 임차인의 입장에서는 반갑지 않다. 집을 빌리는 것은 임차인이지만 돈을 빌리는 것은 임대인이지 않은가.
임차인의 손실을 막아주는 전세금 전환보증은 고마운 존재이다. 더욱이 보증수수료도 저렴한 편이다. 그러나 전세금 반환보증은 투자나 투기 목적으로 전세를 활용하는 임대인에게도 매우 큰 이점을 제공한다. 이 덕분에 임차인들이 임대인의 신용 상태나 주택 가격에 대해 까다롭게 굴지 않기 때문이다. 결국 투기적 수요가 늘어나고 덩달아 주택가격과 전세가격도 오를 수 있다. 모두 임차인에게는 불리한 상황 전개이다.
금융이론에서는 전세금 반환보증을 통해 임대인이 사실상 풋옵션(put option)을 얻은 것으로 이해한다. 주택가격이 전세금을 초과하면 풋옵션을 포기하고 이익을 누리며, 주택가격이 전세금에 못 미치면 풋옵션을 행사하여 주택을 보증회사에 넘긴다. 주목할 것은 임대인 입장에서는 어느 상황에서도 손해를 보지 않는다는 점이다. 투기적 갭투자가 그토록 성행한 배경에는 이와 같은 도덕적 해이 문제가 도사리고 있다.
다만 현실에서 모든 보증상품이 도덕적 해이와 보증회사의 손실로 이어지는 것은 아니다. 도덕적 해이가 우려될 경우 보증회사들이 보증료를 높이는 방식으로 이를 완화하기 때문이다. 그러나 전세금 반환보증의 경우에는 임대인의 도덕적 해이를 제어할 수 있는 보증료 차별화가 존재하지 않는다. 오히려 임차인이 보증료를 내고 있다. 결국 임대인의 도덕적 해이에 따른 비용은 그대로 주택도시보증공사에 전가된다.
결론적으로 전세금 반환보증은 임차인에게 안전장치를 제공하는 동시에 투기적 갭투자를 부추길 가능성이 매우 크다. 이는 도덕적 해이와 공공부문의 재정 부담이라는 구조적 문제를 동반하기 때문에, 제도의 개선과 신중한 관리가 필요하다.
강경훈 동국대 경영학과 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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